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인 쿠팡은 지난해 국내에서 단일 기업으로 가장 많은 2만4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전체 임직원 수는 올해 3월 5만4274명으로 삼성전자(10만9490명, 작년 말 기준), 현대자동차(7만1504명)에 이어 3위다. 소비자 문 앞까지 상품을 가져다주는 배송업의 급팽창이 가져온 결과다.
쿠팡이 블랙홀처럼 인력을 빨아들이면서 차량과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송 근로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귀한 몸’ 대접을 받고 있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쿠팡이 25일 한 달간 유급으로 배달 인력의 건강을 관리하는 ‘쿠팡케어’라는 전례 없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쿠팡 관계자는 “사람인, 잡코리아, 인크루트 등 주요 채용 사이트마다 ‘쿠팡친구(쿠친)’를 모집 중”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오죽했으면 경쟁사인 네이버에 쿠친 모집을 위해 전면 광고를 게재했겠냐”고 했다.
이날 기준으로 쿠팡에 소속된 배송 기사는 1만5000명가량이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주 5일·52시간 근무가 철저히 적용된다는 점 덕분에 기존 택배 기사들이 쿠팡으로 대거 옮겼다. 차량 구입에 돈을 쓸 필요가 없는 데다 한 해 수입도 평균 4800만원으로 어지간한 중소기업 ‘화이트칼라’를 능가한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상황을 바꿔놓고 있다.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쿠팡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자리가 많아진 것.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일반 택배 기사들은 자차를 이용해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며 “쿠팡처럼 정해진 시간만 안정적으로 일해 적당하게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몸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벌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택배 1위사인 CJ대한통운 대리점에 소속된 배송 기사들만 해도 연 평균 수입이 8000만원가량으로 추정된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족 기사의 경우 연간 1억2000만원 정도를 가져간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는 ‘황금 노선’을 관할 구역으로 갖고 있는 CJ대한통운 배송 기사 자리는 약 5000만원의 권리금까지 붙어 거래될 정도다. CJ대한통운 소속 한 택배 기사는 “대형 아파트 단지 배송은 이곳저곳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업무도 빨리 끝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쿠팡은 상장 시 1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정규직 배송·물류 근로자에 한해 나눠주는 등 각종 인센티브(유인책)를 내놓고 있다.
물류업계 최초로 유급 ‘쿠팡케어’를 도입한 것도 배달 인력 확보를 위한 복지 차원이다. 혈압·혈당 등 건강 지표가 상대적으로 높은 배송 직원을 대상으로 한 달 동안 배송 업무를 멈추고 건강 관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쿠팡은 이를 위해 종합병원 건강관리센터장을 지낸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채용했다.
물류센터 근로자를 안정적으로 고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쿠팡으로선 골칫거리다. 전국 170여 곳의 쿠팡 물류시설에서 일하는 근로자 90%가량이 ‘투잡’을 뛰는 일용직이다. 쿠팡 측은 지속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권고하고 있지만 전환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팡 관계자는 “창원시의 근로자 충원 보장 약속 덕분에 새로 짓는 창원 물류센터 규모를 계획보다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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