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장관이 유럽연합(EU)과의 투자협정 비준이 유럽의회에서 보류되자 “무역을 정치화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2016년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무역 보복조치를 감행한 중국이 5년 뒤 EU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인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26일 왕 장관이 전날 뮌헨 안보회의 화상 연설에서 “무역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바꾸려는 일부 사람들의 시도는 용납될 수 없으며 아무 곳에도 이끌 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밝혔다. 왕 장관은 “정치적 대립과 경제적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부추기는 행위는 EU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EU를 경쟁국이 아닌 파트너로 보고 있다. 중국은 상호 존중과 이익을 바탕으로 유럽과의 모든 협력을 확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의회는 앞서 지난 20일 중국이 EU 인사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 전까지 양자 간 투자협정을 비준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중국과 EU는 지난해 12월 7년여간의 협상 끝에 투자 협정 체결에 합의했지만 지난 3월 EU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 인권 탄압 문제를 놓고 중국 관리들을 제재하자 중국도 대(對)EU 제재로 맞대응했다. 왕 장관이 이 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 무역을 동원해 보복했던 중국이 무역과 정치를 분리해서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서며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2016년 한국 정부가 경북 성주군에 미군의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하자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을 내리고 한국 산 콘텐츠와 연예인 출연 광고 등의 송출을 금지했다.
당시 천하이 중국 외교부 아주국 부국장이 방한해 롯데를 포함한 재계 인사들을 만나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냐”며 “너희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하면 단교 수준으로 엄청난 고통을 주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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