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산운용업계가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맞서고 있다. 직접투자 열풍에 전례없는 기업공개(IPO) 열기, 대세로 떠오른 상장지수펀드(ETF)와 해외 주식 등 그간 경험하지 못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모습이다. 혹자는 위기라 말하고, 혹자는 기회라고 말하는 이유다.
자산운용사들에 지난 한 해는 암흑기였다. 코로나19 사태로 급락했던 증시가 ‘V자’ 반등을 이뤄내면서 개인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사는 종목마다 오르다 보니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사들인 주식만 50조원어치에 달한 것도 이 같은 영향을 받았다. 이 덕분에 증권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신규 증권계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빈번하게 이뤄지는 거래는 고스란히 증권사의 수수료 이익으로 쌓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라임, 옴티머스 사태로 인해 ‘펀드’라는 시장 자체가 외면받았다. 운용사들은 일제히 “펀드로 투자자들을 유인할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운용업계는 소비자 중심 경영 전략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위기를 딛고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적자를 낸 기업도 줄었다. 지난해 326개사 가운데 254개사가 흑자를 냈다. 적자를 낸 곳은 72곳이었다. 적자회사 비율(22.1%)은 1년 전과 비교해 13.2%포인트 줄었다. 특히 전문사모운용사의 경우 251곳 중 61곳(24.3%)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적자회사 비율이 16.7%포인트 하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열풍이 거세게 불어 이를 통해 수익을 낸 사모펀드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익률이 개선되는 만큼 펀드 환매도 이어졌다. 개인투자자들은 지난해 50조원어치에 달하는 주식을 유가증권시장에서 사들였다. 이 중 상당수가 펀드를 환매해 직접투자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초 56조3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작년 말 38조8000억원으로 급감했다.
ETF 순자산총액은 1년 새 28.8% 증가했다. 순자산총액은 총자산에서 부채 및 발행비용 등을 제외한 것을 말한다. 주식처럼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데다 개별 종목을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증시 활황을 맛본 ‘개미’ 투자자들이 퇴직연금을 활용해 투자에 나선 것도 ETF 시장의 열기가 꺼지지 않는 이유다. 퇴직연금으로 ETF에 투자하면 매매차익과 분배금에 대한 15.4%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은퇴 후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 수령 방식에 따라 퇴직소득세나 연금소득세를 내면 된다.
이처럼 연금 자산을 ETF 등에 투자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증권사로 계좌를 옮겨 연금 투자에 나선 ‘연금 개미’도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개인형 IRP 계약건수는 지난달 8만2741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4만6673건)에 비해 80% 가까이 늘었다. 개인연금 계좌도 같은 기간 167%(26만8504개→71만6553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공모펀드 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ETF나 연금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있다”며 “소비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상품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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