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렸습니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정부가 쓸 예산을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편성할지 논의하기 위해 각 부처 장관들은 물론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지도부까지 한 자리에 모이는 연례회의입니다. 정부는 매년 5월 이맘 때 열리는 회의 내용을 기초로 다음해 예산을 짜고 향후 5년간 재정을 어떻게 편성할지의 계획이 담긴 '국가재정운용계획'도 내놓습니다.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재정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로 불리는 이유죠.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는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작년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데 큰 이견이 없었지만, 경기 회복세가 완연한 올해엔 정부의 확장적 재정 기조가 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기 때문이죠.
특히 지난해 코로나19라는 '급한 불'을 끄느라 급격히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 정부가 과연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에 시장의 이목이 쏠렸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국책연구기관은 물론이고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최근 한국 정부에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터였습니다. 과연 정부는 어떠한 회의 내용을 내놓았을까요.
재정건전성 개선을 위해 정부의 재정 투입을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 투입을 늘리겠다는 말입니다. 올해를 넘어 백신 보급이 마무리될 내년까지도 말이죠.
문 대통령이 재정건전성 논란이 있다는 점을 모를 리 없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도 "확장재정을 요구하는 의견과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제를 깔았습니다.
"확장재정 운용에 의해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올해 들어 큰 폭의 세수 회복으로 이어져 재정건전성 관리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문 대통령의 논리를 도식화하면 '확장재정→경제회복→세수 회복→재정건전성에 도움'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마중물이 되어 경제가 회복되면 결국 세금도 늘어나기 때문에 확장재정이 재정건전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입니다. 과연 맞는 주장일까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국가 총수요가 증가하고 국내총생산(GDP)도 늘어나는 것은 맞다"면서도 "재정승수(재정 투입액 대비 증가 GDP)가 보통 매우 작기 때문에 재정 지출이 국민 소득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고, 국민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 돈이 다시 소비 등을 통해서 세금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확장재정이 재정건전성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를 보면 정부 이전지출의 재정승수는 0.2로 집계됐습니다. 이전지출은 재난지원금처럼 정부가 민간에 직접 주는 돈을 의미하는데, 정부가 현금성 지원으로 1조원을 쓰면 GDP는 2000억원만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정부의 소비승수(0.85)와 투자승수(0.64)는 이전지출 승수보다는 높지만, 1보다는 여전히 낮습니다. 즉, 정부가 어떻게 재정을 지출하든 국민 소득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정부에게 다시 돌아오는 세금은 당연히 더 적겠죠.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이 재정건전성 악화는 물론이고, 민간 경제의 역동성까지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재정학회장을 맡고 있는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과 달리 올해처럼 경제가 회복되는 시기에는 정부가 시장에 돈을 풀수록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민간 투자가 오히려 위축되는 '구축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며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 다 나오는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물가 및 시중 이자율이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민간 기업이 투자를 줄이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민간 투자가 감소하면 일자리가 그만큼 줄어들고,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지게 됩니다.
성 교수는 "작년처럼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때는 확장재정 정책이 분명히 필요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면서 "정부 스스로도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 회복이 빠르다고 인정하면서 확쟁재정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나 시중 금리가 상승하고 있는 올해엔 구축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것이라는 게 성 교수의 지적입니다. 시중 금리는 앞으로 꾸준히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27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죠.
하지만 증가했다는 세금도 증가한 이유를 들춰보면 확장재정으로 민간 경제가 회복된 영향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이달 11일 발표한 '월간재정동향 5월호'를 보면 올해 1분기 국세수입은 88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9조원 늘었습니다. 그런데 늘어난 주요 원인으로 기재부는 △부동산 거래량 증가 △증권거래금 증가 △법인세 증가 등을 꼽았습니다. 항목별로 정확한 세입액이 나오지는 않지만 정부 스스로 민간 소비가 활성화돼서 세금이 더 걷힌 게 아니라 부동산 급등과 주식 열풍이 겹치면서 세금이 더 걷혔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올해 데이터는 아니지만 작년 1년치 항목별 세입액이 자세히 정리된 '2020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 자료를 보면 부동산 등 자산 관련 세금이 얼마나 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년 동안 국세수입은 285조5462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9081억원 줄어든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같은 기간 9293억원(34.8%)이나 늘어나 총 3조6006억원 걷혔습니다. 부동산·주식 거래량 증가에 따라 양도소득세 수입도 전년보다 7조5547억원(46.9%) 늘었죠.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세금이 그동안 잘 걷혔던 것은 부동산과 주식이 급등하는 동시에 한국 기업들이 수출을 잘 해서 법인세가 늘어난 영향"이라며 "정부가 확장재정 정책을 폈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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