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가계빚…당국이 할 일, 개인이 할 일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5-28 09:09   수정 2021-05-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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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한 가계 빚이 근래 다시 관심사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1분기말 통계가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가계 부채(신용 잔액)이 1765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가 됐다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어떻든 커지고는 있으니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아예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라면, 금융 자산도 함께 증가한다. 경제의 볼륨 자체가 커지는 것과 부채의 증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간다. 성장 기업은 물론 우량 대기업에서도 부채 규모가 늘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부채도 자산의 일부다. 문제는 통제 가능한가, 즉 갚을 수 있는가다.
◆논설실의 까다로운 아젠다… '논평'도 '주장'도 '대안제시'도 쉽지 않아
신문사에서는, 특히 논설실에서는 이런 통계나 관련 기사가 조금은 불편한 아젠다다. ‘영끌’‘빚투’가 보편화 된 말로 굳어지는 판에 개인들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렇다 해서 사설로 바로 다루기도 주저된다. 어떤 사안이든 사설로 쓸 때는 ‘논평’을 해야 하고, ‘우리의 입장’을 내놔야 하고, 때로는 ‘대안’도 제시해야 하는 데 이게 쉽지 않다.

그냥 “문제가 심각하다”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라는 정도로만 논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좀 부족하다. 가계 뿐 아니라 경제가 성장 발전하는 과정에서 부채가 갖는 다양한 속성을 감안 하면, 빚 증가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단기 급증이라면 비상한 관심사로 봐야겠지만, 그 또한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자 연체율의 증감, 못 갚는 빚(부실률)의 변화 같은 것을 따져보는 게 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코로나 쇼크’로 금융감독 당국이 중소사업자에 대한 금융권의 빚 회수 등 ‘대출 관리’를 엄격하게 못 하도록 유도해온 상황을 감안 하면 그것도 큰 의미는 없다. 적어도 지금의 코로나 상황에서는 그렇다.

그렇다고 “더 이상 가계 빚이 늘어나지 않도록 하라”거나 빙빙 돌리는 표현으로 “출구전략을 마련하라, 마련해야 한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출구전략이라는 게 결국은 채권 회수, 대출 제한, 빚감축 그런 말 아닌가. 늘어나는 가계 빚에 금융감독위원회 등 감독 당국이 나서라는 것은 곧 대출억제, 결국 대출 규제를 하라는 말로 이어진다는 점도 걸린다. 시장 질서에 개입하는 규제라는 근본 문제도 있지만, 꼭 필요한 대출예정(희망)자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출에 있어서 실수요,가수요를 누가 판단할 것이며, 구별은 가능한 것인가.
◆어떤 계층에서 어떤 배경에서 늘어난 빚인지 살펴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빚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는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경제(소득이나 자산)적으로 어떤 계층에서, 연령별로는 어느 쪽에서, 가능하다면 지역이나 직업별로는 어떤지 구별해가며 살펴보는 노력은 해야 한다. 그래야 상황진단이 될 것이고, 당국에 대응책을 제안하든 대책을 주문하든 할 수 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혹은 한국은행이 이런 일에 좀 더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원론적으로는 “은행을 비롯해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 즉 채권단에서 이제 좀 더 긴장해야 할 때”라는 점은 충분히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금융사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주시도 이 연장 선상에서 필요하다. 은행 등 금융회사의 자산관리 혹은 건전성에 대한 감독 강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또 정부 쪽과는 별개로 한은에 대해서도 “이런 판에도 저금리로 돈 풀기를 계속할 것인가”라고 다그치는 것도 한 포인트다. 양적완화가 됐든, 유동성 공급이 됐든 저금리 정책으로 한은이 시중에 돈을 풀어온 것은 사실이고, 가계 빚은 그런 과정에서 늘었다. 물론 미국을 비롯해 코로나 쇼크 와중에 그러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경기 살리기 노력에다 정치권의 압박까지 겹치면서 사실은 코로나 이전부터 그러했다.

자산시장에 대한 논평도 시도할 수 있다. 집값 등 부동산 가격, 주식과 채권, 실물 상품 투자시장, 최근에는 암호 화폐에 이르기까지 거품논쟁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가계 빚도 그런 맥락과 분리해서는 볼 수가 없다. 사설에서 논평을 하자면 “(더 이상의 버블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이 필요한 것 아닌가”“(자산의 거품을 빼면서) 출구전략을 모색하자”는 주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여의치 않으면 “가계부채가 (어떻든) 걱정된다” “이렇게 급증하니 후유증이 무섭다”고 논평할 수는 있겠지만 ‘엣지’(예각)이 적어 보인다. 책임감은 좀 떨어질 수 있겠지만, “이렇게 빚이 늘어나다가 사회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라고 논평만 하고 그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당국이 적극 나서고 당장 조치도 하라”는 것만큼이나 규제 주문이 될까 겁난다.

논의 끝에 한경 논설실은 한은의 이번1분기 말 가계 빚 통계에는 논평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정부, 잘못된 정책이 대출 부추기지 않았나… 개인이 할 일도 중요
하지만 정부는 비상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게 금융 당국이 할 일이다. 먼저 젊은 층이 왜 ‘영끌’‘빚투’에 나서게 됐는지 여러 각도로 보기 바란다. 물론 출발점은 급등한 집값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소득층 빚이 늘어났다면 그 또한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여권 내에서조차‘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뒤늦은 반성이 나오는 것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저금리라는 마약 같은 정책이 저축의 중요성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 자산시장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어떤 식이 세련되고 효과적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할 게 정말로 많다. 그렇다고 투박하게 섣불리 나서면 큰 일 난다.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못 할 수 있다.

개인의 할 일은 무엇일까. 자산의 규모, 원리금 갚기가 스스로 역량 범위 내인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대출 계획이 있다면 향후 금리변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빚관리 만큼이나 자산관리도 중요하다. 자기 수준을 알고 장단기 미래 상황을 냉철히 재봐야 할 때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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