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근이세요?”
지난 28일 오후 6시. 회사 근처 지하철 충정로역 1번 출구 근처를 두리번거리자 중년의 여성분께서 다가와 물었습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얼른 가방을 건네자 이리저리 물건을 살펴보던 여성분이 “이 물건 대체 왜 파는거예요?”라고 질문해왔습니다. ‘첫 거래가 실패하나’라는 생각에 진땀을 흘렸습니다. “제가 출퇴근을 할 때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데요. 노트북을 담기엔 가방이 조금 작아서요”라며 더듬더듬 변명을 했습니다. 이내 돌아온 답변은 “가방이 생각보다 더 깨끗해서요. 득템했네요” 였습니다. 그렇게 첫 중고거래로 5만원을 벌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한국. 당근 문화가 시작됐습니다. 10대 고등학생인 기자의 친척 동생도, 50대 중년인 기자의 어머니도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를 합니다. 재택, 집콕을 하게 되면서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커져서입니다. 당장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들여 더 넓은 공간으로 이동할 수 없다면 버리고 비우는 게 낫습니다. 이른바 ‘국민 앱’으로 성장한 당근마켓에는 지난 3월 한달 새에만 방문자 1500만명이 방문을 했다고 합니다. 15살 이상 인구(4502만명) 셋 중 한명이 당근마켓을 이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첫 거래로 돈을 벌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중고거래로 돈을 벌어볼까’하는 생각에 1년차 프로 당근러라 자부하는 지인 박유진 씨(34·가명)를 찾았습니다. (한때 엄청난 맥시멀리스트였지만) 최근 미니멀리즘을 선언한 유진 씨는 중고 거래로 한 달에 적게는 5만원, 많게는 200만원도 번다고 합니다. 유진 씨는 중고거래의 원칙 몇가지를 일러줬습니다. ‘가격은 앞서 거래를 마친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품들의 거래가를 감안해 책정할 것’, ‘상품 설명은 최대한 자세하게’, ‘구매한 상품을 가격을 높여 다시 재판매하는 것 금지’, ‘거래 장소는 협의하에 결정하되 판매자가 지역 선정의 우선권이 있음’. ‘거래 장소는 지하철역이 가깝되 잠시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가장 적합하다’ 등이었습니다. 지나치게 시장 가격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20% 이상 할인을 하는 것을 지양하라는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유진 씨의 조언을 얻어 거래할 물품을 선정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개인별 선호 사이즈가 다양한 옷이나 신발보다는 가방이 거래가 잘된다고 합니다. 커피머신이나 공기청정기 등 재택시 필요한 가전제품도 중고시장에선 인기가 많습니다. ‘명품 소비’ 열풍은 중고거래 시장에도 퍼져 샤넬, 루이비통 등의 선호도도 높습니다. 오래 전 선물 받았지만 쓰지 않던 커피머신, 한 눈에 반해 충동구매했지만 쓰지 않던 그릇, 첫 휴가로 해외여행을 갔을때 줄까지 서며 구매했지만 서랍 한구석에 박혀 있던 에코백, 어머니가 오래 전 착용했던 밍크코트와 샤넬 가방 등 15가지 물건을 당근마켓 중고거래 카테고리에 게시했습니다.
거래지역도 설정했습니다. 당근마켓에선 최대 두군데까지 거래할 지역을 정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과 직장이 가까운 곳 두 곳을 지정한다고 합니다. 저는 지역별 특성을 분석해보고자 강남과 강북 각각 한 곳씩을 꼽았습니다. 강북구 미아동와 강남구 청담동입니다. 각각은 상대적으로 중저가 주택이 많은 외곽 지역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즐비한 부촌입니다. 지역 설정을 하려면 현재 위치를 인증해야합니다. 거래를 할 때 마다 두 곳을 왔다갔다하며 틈틈이 ‘내 동네 인증’도 했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덕일까요. 예상보다 수익은 짭짤했습니다. 거래물품 15개 중 9개를 팔아 5월 한 달간 151만8000원을 벌었습니다. 비교적 고가의 샤넬 가방과 밍크코트가 매출을 높이는 일등공신이었습니다. 물론 거래과정에서 미리 정했던 원칙을 다 지키진 못했습니다. 60만원에 올렸던 밍크코트는 약 33%(20만원)나 할인해 판매했습니다. 어머니께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다는 구매자님의 호소를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2만원짜리 가방을 팔러 나갔는데 노련한 20대 당근러에게 설득당해 되레 7만원짜리 신발을 사온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로써 순수익은 144만8000원입니다.
한 달간 중고거래를 하며 느낀 점은 ‘전략을 잘 세워 노력하면 생각보다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입니다. 중고시장에도 ‘부익부 빈익빈’은 있다도 체감했습니다. 청담동에선 두 가지 물건밖에 판매하지 못했지만 140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물건 하나당 평균 65만원을 받은 셈입니다. 미아동에선 상품 7개를 팔았지만 11만8000원을 팔았습니다. 거래 1건당 평균 1만6000원정도 벌 수 있었습니다.
지역 내 파워 당근러의 수입은 더 큰 격차를 보입니다. 샤넬가방 거래를 하며 만난 윤명희 씨(44·가명)는 지난 4월 한 달 간 명품 가방과 신발, 고가의 의류를 판매해 13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윤 씨는 “명품은 판매글을 게시하면 대략 일 주일 내엔 구매 희망자가 나타나곤 한다”며 “9년 전 600만원가량 주고 구매했던 샤넬 자켓을 70만원에 판다고 올리자마자 30분만에 2분이 연락을 해와 바로 판매했다”고 전했습니다. 명희 씨가 보여준 500여개의 거래 품목에선 샤넬, 디올, 루이비통, 로로피아나 등 고가 명품이 줄을 이었습니다. 2800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도 있습니다.
반면 미아동에서 에코백 매매를 하며 만났던 최소연 씨(32·여)는 지난달 2만8000원치를 팔았습니다. 소연 씨는 20대 중반에 상경해 8년째 미아동에서 자취 중입니다. 그는 지금껏 집 근처에서 300건 이상의 중고 거래를 진행했습니다. 지난달엔 초특가 할인에 정신이 팔려 충동구매했지만 먹지 않던 쥐포·진미채·뱅어포 등 건어물(4500원), SPA 브랜드 자라에서 싸게 샀지만 손이 가지 않는 치마(6000원) 등을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선 주로 몇천원~몇만원대 저렴한 상품이 잘 팔립니다. 소연 씨는 “물건을 그냥 버리면 아까운데 몇만원이라도 벌면 용돈벌이는 한다”며 싱긋 웃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