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는 3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난히 ‘공정’과 ‘성장’을 강조했다. ‘간판 공약’인 기본소득에 대해선 “국민적 동의를 거쳐 점진적, 순차적으로 도입하겠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듯한 입장을 내비쳤다. 기업 정책과 관련해선 “정부가 기업에서 뺏어가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인허가) 시간을 지체시키지만 않는다면 기업은 알아서 성장할 수 있다”며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재난지원금을 30만원씩 100번을 더 줘도 상관없다” “비정상적인 재벌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이재명은 합니다》는 과거 발언과 거리가 있는 얘기다. ‘한국의 차베스’ ‘포퓰리스트’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오해”라며 적극 반박했다.
인터뷰 곳곳에선 여론조사 1위의 여유도 느껴졌다. ‘공정 가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부터 차용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이 지사는 양복 상의에 단 경기도 배지를 가리켰다. 그는 “3년 전 도지사 취임 직후 내건 경기도 슬로건이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이라며 “차용했다면 윤 전 총장이 (내 것을) 가져간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공정이 중요한 시대적 화두입니다. 공정성 회복, 공정한 자원 배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고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 시대 정치인에게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요.
“용기와 결단의 리더십이 정말 중요합니다. 문제를 알고, 해결방안도 알지만 두려워서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기득권의 저항과 갈등 때문입니다. 잠시 고통스럽고 비난받더라도 결과만 낼 수 있다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리더십을 보여준 구체적 사례가 있습니까.
“경기지사 취임 직후 경기 전역의 계곡 불법시설물을 싹 정비했습니다. 대부분 정치인이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며 뜯어말렸습니다. 두 가지 옵션을 제안했습니다. 자진 철거 땐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이전 지역에 휴게실, 화장실 등 공공시설을 설치해준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강제로 철거당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모든 비용도 청구하겠다고 경고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2019년 9월 공식 지시 후 석 달 만에 자진 철거율이 99.7%에 달했습니다.”
▷이재명표 1호 경제정책이 궁금합니다.
“공정 성장입니다. 시장이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하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공정한 경쟁의 질서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구조적인 저성장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본의 양도 충분하고 노동의 질도 우수합니다. 그런데 왜 저성장할까요. 결국은 (부의) 편중 때문입니다. 경제가 다시 성장하려면 자원 배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도 그런 이유에서 주장하는 건가요.
“사람들은 제게 ‘분배주의자’라고 합니다. 과거엔 분배와 성장이 상치되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엔 분배 강화, 공정성 강화가 자원을 사장시켰지만 지금은 수요 증진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지난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했던) 1차 재난지원금이 대표적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현금 지원이 총수요 진작에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도 한 젊은 소상공인을 만났는데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현금 300만원을 받아 밀린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합니다.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면 소비자는 통닭을 시키고, 치킨집은 닭과 기름을 삽니다.”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입니까.
“1차 재난지원금 규모는 13조4000억원 정도로, 40조원대의 2·3·4차 재난지원금보다 규모가 작습니다. 그런데 소상공인들이 체감하는 효과는 훨씬 컸죠. 현금으로 주지 않고 석 달 안에 직접 소비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현금이 아니라 매출 기회를 줬다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이런 식으로 정책을 잘 설계하면 기본소득이 큰 소비승수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공정과 함께 성장을 얘기하는 건 의외입니다.
“저출산, 실업, 사회 갈등 등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원천은 저성장입니다. 젊은이들이 공정에 열망하는 이유는 (성장의)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회의 총량이 줄었습니다. 성장을 회복하는 게 우리 사회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입니다.”
▷2017년 대선 경선 때 1인당 연 100만원으로 시작해 장기적으로 연 600만원까지 늘리자고 했습니다.
“1인당 100만원은 우리 재정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지역화폐형 기본소득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다만 금액 확대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 공론화를 거쳐 순차적,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입니다.”
▷‘포퓰리스트’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른 정치인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스트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한 일 중 (정치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은 없었습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저항과 갈등이 있더라도 끝을 보는 게 제 정치 스타일입니다.”
▷기업들은 규제 강도가 세질 것을 걱정합니다.
“기업 고위층에선 ‘친기업 정치인’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두산건설이 성남 정자동에 병원용지로 값싸게 분양받은 땅이 있었습니다. 이전 시장들은 토지 용도를 변경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특혜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죠. 저는 용도를 변경해주기로 하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부지의 10%를 성남시에 기부채납(공공기여)하고 해당 부지에 두산그룹 계열사 여섯 곳 이상을 이전하도록 했습니다. 두산 계열사들은 모두 이전했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실패’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관료들의 저항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은 정해져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 수 없다는 인식을 시장 참여자들에게 심어주면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히 이런 기조를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관료들에 의해 묵살당하고 있습니다.”
▷실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 완화를 주장했는데요.
“실거주 1주택과 1가구 1주택은 차이가 큽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해당 지역 집을 팔고 서울 강남 집을 사들이면서 집값이 오르는 겁니다. ‘실거주 1주택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 정책 중 잘못된 건 없습니까.
“공이 있으면 과도 있겠죠. 다만 저도 문재인 정부의 일원입니다. 아직 임기가 1년가량 남아 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참여한 정부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대선 출마 선언은 언제 할 생각인가요.
“고민 중입니다. 대선 출마를 결정하더라도 지사직은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수행할 생각입니다.”
정리=전범진/좌동욱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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