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의 원조는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가 내놓은 비트코인이다. 그런데 ‘진짜 원조 가상화폐’는 그보다 7년 앞서 대한민국에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싸이월드가 2002년 선보인 도토리다. 미니홈피와 아바타를 꾸미는 데 쓰였던 도토리는 ‘싸이 열풍’을 타고 활발하게 거래됐다. 전성기엔 하루 300만 개, 3억원어치씩 팔려나가 싸이월드가 도토리 판매로만 1년에 1000억원 넘는 매출을 올렸을 정도다. 그러나 싸이월드가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쇠락하면서 ‘도토리 경제’도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2019년엔 서버 운영비를 내지 못해 아예 접속이 끊겼다. 당시 남은 도토리 잔액이 38억4996만2841원, 도토리를 한 개 이상 보유한 회원은 276만6752명이었다.
이런 싸이월드가 부활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가까스로 찾은 새 주인은 5개 기업의 합작법인이라는 싸이월드제트. 이 회사는 서버에 저장된 사진 170억 장, 음원 5억1000만 개, 동영상 1억5000만 개를 전부 복구하겠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도토리 환불 신청도 받기 시작했다. 싸이월드에 블록체인 기술을 얹어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서비스로 탈바꿈한다는 구상이다.
싸이월드제트의 지배구조는 베일에 싸여 있다. 컨소시엄 5개사 중 코스닥시장 상장사 스카이이앤앰과 인트로메딕, 신생법인 싸이월드랩스만 공개됐다. 회사 측에 물으니 “다른 주주는 대기업 관련 투자사와 지명도 높은 투자자인데, 가십거리가 되기 싫다며 당사자들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올 1월 싸이월드제트가 전제완 전 대표로부터 싸이월드 운영권을 인수한 금액은 10억원. 임금체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전 대표가 갚아야 할 돈이 딱 10억원이었다. 싸이월드의 기업 가치가 사실상 0원에 가까웠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싸이월드제트는 암호화폐 사업을 들고나왔다. 새로운 코인 ‘싸이도토리’를 개발해 암호화폐거래소에 상장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와 별도로 MCI라는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을 만든 MCI재단과 ‘싸이월드 코인 발행 계약’을 맺었다. 빗썸에서 10~20원 하던 MCI는 싸이월드와의 협업이 발표된 지난 4월 한때 94원까지 치솟았다. MCI 코인은 최근 싸이클럽으로 이름을 바꿨다.
싸이월드제트의 법인 등기를 확인해 보니 MCI재단 대표, 그리고 MCI재단과 협력관계를 맺었던 기업·협회 인사들이 이사진에 이름을 올렸다. 암호화폐공개(ICO)로 300억원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가 사업을 접은 어느 알트코인 개발자도 보였다. 회사 측은 “싸이도토리가 추구하는 메타버스 생태계에 여러 패밀리 코인이 필요하고, MCI는 그중 하나”라고 했다.
정황이 이렇다고 해서 ‘수상하다’고 저격하면 이 회사는 억울할 것이다. 다만 싸이월드의 행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플랫폼에 연계해서, 혁신적인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은 3~4년 전부터 수도 없이 쏟아졌지만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다. 31분 만에 1076배 폭등해 세간을 놀라게 한 아로와나토큰은 어땠나. ‘한글과컴퓨터의 투자를 받은 금 유통 플랫폼’이란 수식어 외에는 실체가 없었다. 한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싸이도토리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없는데 우리 거래소에 상장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언급돼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승자독식 법칙’이 지배하는 SNS의 특성상 싸이월드가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다고 평가한다. 남은 것은 인지도뿐인 싸이월드가 결국 ‘코인 사업’에 활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싸이월드가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해 기우로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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