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 사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철강, 알루미늄, 목재 등에 부과되는 관세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매긴 관세가 오히려 미국 산업계와 물가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비판이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때 생겨난 관세를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호무역에 앞장서며 2018년 중국 등으로부터 수입하는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앞서 2017년에는 캐나다산 목재에 24%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지난해 9%로 낮췄다. 바이든 행정부는 관세 정책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당장 철폐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산업계는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과의 연관성까지 내세우며 관세 철폐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관세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비싼 가격으로 철강 등을 수입해야 해서 경쟁력이 약해진다는 기존 주장을 확대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인플레이션과 관세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잠시 화두로 떠올랐다가 사그라든 이후 수년 만에 부활한 이유는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지표 동향 때문이다. 일례로 목재 선물가격은 평년 대비 4배가량 상승한 상태다. 로버트 디츠 미국주택건설업협회(NAH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내에서 자급자족이 되지 않는 원자재에 관세를 매기는 행위는 경제논리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대표적 인플레이션 지수 중 하나인 4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올라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참고하는 지표인 근원 PCE 가격지수(음식료·에너지 제외)는 작년 동기 대비 3.1% 상승해 1992년 이후 29년 만에 최고치를 타나냈다. 앞서 발표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지난해 4월보다 4.2% 뛰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관세와 인플레이션의 상관관계가 미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국 경제연구소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앤드루 헌터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관세 부과가 소비자물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점을 들며 “관세가 없어진다고 해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전체 철강 수요 중 3분의 1가량이 수입으로 충당되지만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주요 산지는 관세 면제 대상이라 실제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WSJ는 도입 초기에는 관세가 소비자가격에 일부 반영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들이 자체 부담으로 떠안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관세 부과 문제가 불거진 2018~2019년 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예상치를 분석한 결과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낮아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의 관세 철폐 요구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제조업체 300여 곳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 철강, 알루미늄 관세를 즉각 폐지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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