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갖 과학기술의 문명을 누리고 있고, 4차 또는 5차 산업혁명까지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누리는 수준을 넘어서 그 과학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뒤따르는 비용이나 가져올 혜택이 어떤 것인지 적극적으로 따져보고 다루기 위해서는 일상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과학 소통을 위해서는 두 가지 언어가 필수적이다. 하나는 수학, 다른 하나는 영어다. 여러 가지 물리량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물리량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는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편집자로부터 수학 방정식 하나에 독자 수가 반씩 줄어든다는 말을 들었지만, 스티븐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공식까지 생략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물리학의 공식은 물리량 사이의 정량적인 관계를 엄밀하게 나타내는 실용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서 ‘수학으로 표현된 시(詩)’라고도 할 수 있다.
수학식까지 쓰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수학적 표현이 과학 소통에 필요하지만, 우리말로 표현할 때는 주저하게 된다. 필자는 산술급수나 기하급수라는 표현보다 ‘식량생산은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인구는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맬서스의 인구론을 표현하는 것이 편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될지 고민하게 된다. 디지털컴퓨터와 양자컴퓨터의 능력을 비교할 때 이런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중국은 일본보다 앞서 서구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였지만, 과학기술뿐 아니라 서양의 현대문명 용어를 한자어로 번역하고 정착시키는 일은 일본이 주도했다. 일찍이 네덜란드와 교류한 일본은 화란 배우기라는 뜻의 난학(蘭學) 연구를 통해 동양의 고전, 서양 용어의 어원 등을 종합적으로 참조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상당수의 한자 용어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자를 쓰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대부분의 소통을 한글로만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소리는 같고 뜻은 완전히 다른 동음이의어가 혼동을 부르기도 하고, 어원을 몰라 새로운 개념을 배울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수직선(垂直線)과 수평선(水平線)의 수는 서로 다른 글자이고, 수직선(數直線)은 수학에 나온다. 그래서 가능하면 포스(force) 대신 ‘힘’, 워크(work) 대신 ‘일’, 파워(power) 대신 ‘일률’과 같은 순우리말 용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 쓰기도 한다. 길이, 넓이, 부피, 무게 등의 용어들은 아름답고 자부심까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순우리말 용어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기술적으로 정확한 의미와 일상적인 의미를 혼동할 수도 있다.
영어가 현대문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어휘 수도 많아진 데는 인위적인 통제를 하지 않고 활발한 언어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위적인 통제보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과학 소통으로 우리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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