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女중사 "하지마세요" 블랙박스 확보하고도 뭉갰다 [종합]

입력 2021-06-02 22:36   수정 2021-06-02 22:41


공군 이모 중사가 지난 3월 선임인 장모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사건 직후 군사경찰은 성추행에 저항하는 상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 음성을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차량 블랙박스에는 "하지 말아 달라. 앞으로 저를 어떻게 보려고 이러느냐"는 이 중사의 절박한 목소리가 모두 녹음됐다.

그러나 공군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장 중사가 다른 부대로 파견 조치된 건 사건 발생 후 2주일이 지난 3월 17일이었다.

겉으론 매뉴얼대로 사건 처리가 진행됐지만 뒤에선 집요한 회유와 합의 종용이 이어졌다.

사건 다음날 장 중사는 이 중사의 숙소에 찾아와 "없던 일로 하자"고 했고, 부대 상관들도 "살다보면 겪게 되는 일"이라고 했다. 심지어 같은 군인이던 이 중사의 남자친구에게까지 연락해 회유했다.

유족 측은 "공군에서는 모든 조치를 다 했다고 의원들과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객관적인 사실과 매우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군 검찰단은 사건 석달만인 오늘에서야 장 중사를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오늘밤 군사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다.

가해자인 장 중사는 첫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차량 안에는 두 사람 외에 유일한 목격자인 운전을 하던 후배 부사관(하사)이 있었다. 운전을 한 하사도 군사경찰 조사에서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공군본부 검찰부에서 선임해준 국선변호인은 피해자 보호는 물론 사건 자체에 관심이 없어보였다고 주장했다. 공군 스스로 밝힌 국선변호인과 피해자의 통화는 단 두 차례였다.

공군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유족들은 새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국선변호인에게 고소장과 고소인 진술조서 등 기본적인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체 자료가 없다면서 주지 않았다.

이 중사는 피해 이후 20비행단 소속 민간인 성고충 전문상담관으로부터 22회의 상담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상담 중이던 지난 4월 15일 상담관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같은 달 4월 30일 성폭력상담소는 "자살징후 없었으며, 상태가 호전됐다"는 진단과 함께 상담을 마쳤다.

이 중사는 5월 3일 청원휴가가 끝났지만 2주간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자가격리를 했다. 격리가 끝난 뒤 20비행단에서 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 조치가 이뤄졌고, 나흘 만인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일 사건 이후 처음으로 유가족을 만나 "한 점 의혹이 없게 수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욱 장관을 만난 이 중사 모친은 오열하다 쓰러졌다.

한편 이 중사는 억지로 저녁 자리에 불려 나간 뒤 귀가하는 차량 뒷자리에서 강제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사는 지난 18일 청원휴가를 마친 뒤 전속한 부대로 출근했지만, 나흘 만인 22일 오전 부대 관사에서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중사는 발견 하루 전 남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쳤으나 당일 저녁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도 휴대전화로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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