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미국의 정치 구조가 전환기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건국 이후 300년 넘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던 전통적 정치 구조가 팬데믹과 기후 위기, 미·중 신냉전 등 세계 정세의 격변으로 고장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주류 정치 세력이 최근 세 집단으로 나눠졌다고 분석한다. ‘토크빌주의자’는 기존 미국 정계의 압도적 주류였으며 아직까지도 세가 가장 강력한 집단이다. 명칭은 1835년 알렉시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등 ‘미국적 가치’를 예찬했던 데서 비롯됐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대통령 대다수와 민주, 공화 양당의 온건파 정치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헌팅턴주의자’는 다른 문명에 대한 적대감을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세력으로 규정된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의 이름에서 따왔다. 헌팅턴주의자의 대척점으로는 사회주의자 유진 데브스의 주장에 동조하는 ‘데브스주의자’다. 미국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이들이다. 이 세력들이 걷잡을 수 없이 충돌하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 정세의 불확실성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가 내린 결론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경제·사회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등 다소 진부하다. 정치 세력을 구분하고 특징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느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부족한 점도 아쉽다. 그럼에도 풍성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국의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한 점은 돋보인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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