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효과냐 분수효과냐…4000조원 부자증세 나선 美 바이든

입력 2021-06-07 09:03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3조6000억달러(약 4000조원)에 달하는 ‘부자 증세’를 추진하고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사진)이 구상한 4조달러 이상의 인프라 투자와 교육·복지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28일 대기업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올리고, 고소득자의 소득세율도 상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세제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내년 회계연도에 6700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도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수효과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우리 경제를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와 중간으로부터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예산안”이라고 했다.
바이든 “경제성장은 아래와 중간으로부터”
모든 국가는 경제 발전을 원한다. 하지만 경제 발전에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 이를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가지 시각이 바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와 분수효과(fountain effect)다.

바이든이 비판한 낙수효과는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경기가 살아나면서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가고, 결국 경제 전체에 이롭다는 주장이다. 흘러내린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트리클 다운’에서 유래한 말이다.

낙수효과를 지지하는 쪽은 보통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다. 미국에선 1980년대 레이건, 최근 트럼프 대통령 등이 낙수효과에 근거한 경제정책을 폈다. 기업의 법인세와 부유층의 소득세를 낮춰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자 했다. 한국이 1960~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대기업을 집중 지원해 경제를 빠르게 키운 것도 낙수효과의 사례로 꼽힌다.

분수효과는 낙수효과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이론이다. 정부가 서민과 저소득층의 소득부터 늘려주면, 총수요 진작과 경기 활성화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고소득층 소득까지 높인다는 주장이다. 물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면서 주위를 적시는 ‘분수’에서 따왔다.

분수효과의 지지자들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진보 성향이 많다. 부유층보다는 저소득층이 정부 지원을 받을 때 소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때문에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시도됐던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방안에 대해 “대기업·부유층의 소득과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중산층을 키운다는 것”이라며 “2025년이면 법인세 수입이 2020년의 갑절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살리는 길, ‘낙수’냐 ‘분수’냐
낙수효과가 맞느냐, 분수효과가 맞느냐는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치열하다. 낙수효과는 부자들에게 혜택을 몰아줘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라는 비판을 줄기차게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5년 낙수효과가 허구라는 보고서를 냈다. 150여 개국 사례를 실증 분석한 결과 상위 20% 소득이 1%포인트 늘면 이후 5년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0.08% 하락했다는 것이다. 분수효과가 현실에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럽연합(EU) 일부 국가는 분수효과를 노리고 복지지출을 대대적으로 늘렸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정난에 빠져들었다.

바이든의 계획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증세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인 공화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공화당은 대통령의 구상이 국가 재정난을 심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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