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암호화폐) 채굴 수요에 덩달아 몸값이 치솟았던 컴퓨터용 그래픽카드 가격 급등세가 한풀 꺾였다.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규제를 예고하고, 주요 그래픽 카드 제조사가 그래픽카드 채굴 효율을 낮추는 등 제한 조치가 나오면서다.
'채굴'은 컴퓨터로 특정 연산 프로그램을 24시간 돌려 가상자산을 얻는 작업을 말하는데, 지난해 말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타자 채굴 업자들이 그래픽카드를 '싹쓸이'하면서 가격이 치솟았다.
4일 가격 비교 전문 플랫폼 다나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90만원대에 출시된 엔비디아의 RTX3080은 현재 200만원 초중반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초만 해도 같은 사이트에서 이 제품은 300만원에 달했고, 이마저도 물량이 없었다. 1개월 사이에 가격이 50만원 이상 내리면서 물량도 조금씩 풀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60만원대에 출시된 RTX3070도 현재 130만~14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 제품 역시 지난달 초 가격이 200만원 초반대까지 올랐다가 현재 80만원 가까이 내렸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채굴 채산성이 떨어진 여파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따르면 지난 4월12일 8199만원대까지 치솟았던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이날 오전 10시 현재 4487만원까지 떨어졌다. 두 달도 안 돼 개당 가격이 45% 하락했다.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가상자산 규제에 대해 강경 발언을 내놓은 데다, 비트코인 채굴의 65%를 차지하는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투기 단속에 나섰다.
중국은행업협회 등 3대 금융 유관협회는 지난달 18일 가상자산 거래와 이를 지원하는 행위가 처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는 사흘 뒤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를 열고 비트코인의 거래와 채굴을 모두 "타격하겠다"고 언급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가상자산 채굴 금지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잰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전날(현지시간) 글로벌 기자간담회에서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 카드와 채굴용을 분리하겠다"고 했다. 새롭게 출시하는 그래픽카드의 '채굴 효율(해시 레이트)'을 낮춰 채굴업자들이 개인용 그래픽 카드까지 쓸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잰슨 황 CEO는 "우리는 그래픽카드를 (채굴업자들로부터) 지키고 싶다"면서도 "채굴 제한과는 별개로 그래픽카드 가격이 당장 정상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그래픽카드 가격이 여전히 비싸다고 지적한다. 수요가 단기간에 급격히 늘자 채굴업자들뿐 아니라 '리셀러'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여전히 유통 가격이 정가 대비 2~2.5배에 달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작 그래픽 카드가 필요한 일반 소비자, 대학 연구소, PC방 업체들은 여전히 구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에서 충분한 물량을 내놓아도 유통업자 단계에서 원활히 풀리지 않는 게 문제"라며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소비자들이 정가에 1.5배까지만 떨어져도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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