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현장 보고도 지나쳤는데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게재돼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글쓴이 A 씨는 몇 달 전 길을 걷던 중 차 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A 씨는 "상황을 제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지만 솔직히 휘말리기 싫어서 갈 길 갔다"면서 "성폭행 피해자를 도와줬다가 도리어 귀찮은 일에 휘말린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현장을 지나쳐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며 목격자가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신상이 추적된 것이다.
경찰은 사건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추적하고 A 씨가 이용한 가게의 카드 내역을 추적해 그를 특정지을 수 있었다.
경찰은 A 씨에게 "목격자인데 왜 신고하지 않았느냐"며 참고인 조사를 요청했다.
A 씨는 "휘말리기 싫어서 전화 끊었는데 불이익이 있을까 봐 걱정된다. 전화가 계속 오는데 무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글은 SNS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국내 대표적인 남초 커뮤니티, 여초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공유됐다.
여초 커뮤니티로 알려진 인스티즈, 더쿠의 이용자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글을 올린 A 씨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엮여서 피해를 본다는 건 말리려고 개입했을 때 이야기 아닌가. 적어도 신고는 하고 목격 진술을 해야지. 사람도 아니다", "온몸으로 막으란 것도 아니고 112 신고하라는 건데 그게 어렵다고", "법적으로 문제없더라도 도의적으로 양심에 찔리지 않느냐" 등의 반응을 보이며 분노했다.
남초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 보배드림 이용자들은 "신고해 주면 덤터기, 신고 안 하면 방조",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도와주나. 무슨 봉변을 당할 줄 알고", "신고 자체도 귀찮다. 신고하면 경찰에 번호 넘어가고, 오라 가라 할 것. 귀찮은 건 사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남성 네티즌들은 "신고하고 나서 뒷감당해 본 적이 있다"라며 "신고 한번 해보면 '아, 앞으로는 절대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라고 경험을 전했다.
네티즌들은 "신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며 "방조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범죄 현장을 목격하고도 귀찮은 게 싫어서 외면한 경우 법적 처벌 대상이 될까.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범 체포는 국민의 의무가 아니지만 성폭력 사건의 현장을 목격했다면 적어도 112 신고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피해자에게는 당시 목격자가 자신을 지켜줄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며 "여기서 중요한 건 법적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목격자에게 책임은 없지만 위험에 빠진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건 공동체 사회에서 요구되는 절대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목격자에게 피해자를 구조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방조범 성립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가헌 변호사 또한 "우리나라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도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령(부모와 자식), 계약(수영강사와 학생) 등 작위의무가 있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인을 돕지 않았다고 처벌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발생한 것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비유로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도 그냥 지나쳤으나 한 사마리아 사람만은 성심껏 돌봐 구해 주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착한 사마리아 인 법'은 도덕적인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여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도움말 =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가헌 변호사
※[법알못]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피해를 당한 사연을 다양한 독자들과 나누는 코너입니다. 사건의 구체적 사실과 정황 등에 따라 법규정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답변은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변호사 소견으로, 답변과 관련하여 답변 변호사나 사업자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갑질이나 각종 범죄 등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고발하고픈 사연이 있다면 메일 보내주세요. 아울러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 등의 댓글은 명예훼손,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나 /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