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과 여동생 세 명 사이에 촉발됐던 범LG가(家) 식품업체 아워홈의 경영권 다툼이 세 자매의 완승으로 끝났다. 구자학 회장의 장남 구본성 부회장은 보복운전과 방만경영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되고, 막내딸인 구지은 전 캘리스코 대표가 그 자리에 올랐다.
낙후한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위기가 57년 역사의 남양유업을 무너뜨린 데 이어 범LG가의 ‘장자 승계’ 원칙마저 허물어버린 셈이다.
아워홈은 4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구 전 대표가 제안한 신규 이사 21명 선임 안건 등을 통과시켰다. 이사진을 장악한 구 전 대표 측은 주총이 끝나자마자 이사회를 열어 구 부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구 전 대표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분 19.3%를 보유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장녀 구미현 씨가 여동생 손을 잡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구 신임 대표(20.67%), 차녀 구명진 씨(19.6%) 등 세 자매의 지분율은 59.57%로 구 부회장 지분율(38.56%)을 훌쩍 넘겼다.
단체급식 분야 2위 업체(시장 점유율 기준) 아워홈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회장이 1984년 설립한 회사다. 2000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구 회장의 1남3녀 중 가장 먼저 아워홈에서 경영 수업을 받은 것은 구 전 대표였지만, LG 일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2016년부터 구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구 전 대표는 2017년과 2019년에도 회사 실적 부진, 과다한 보수 지급, 구 부회장 자녀의 이사 선임 등을 지적하며 구 부회장 공격에 나섰으나 이때는 큰언니 구미현 씨의 조력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구 부회장의 경영 리스크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9월 보복운전을 하고 차에서 내린 상대 운전자를 고의로 친 사건으로 지난 3일 유죄(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자본시장도 등을 돌렸다. 구 부회장은 올초부터 경영계와 사모펀드(PEF)를 대상으로 ‘백기사’를 수소문했지만 실패했다.
새로 경영권을 쥔 구 대표는 곧바로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동시에 상장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 등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한 PEF 대표는 “잇단 도덕성 논란 끝에 지난달 말 PEF에 매각된 남양유업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영진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비자와 투자자의 시선이 전례 없이 엄격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김종우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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