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성 포퓰리즘 vs "알고 공격하라"…대선판 '킹핀'된 기본소득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6-06 13:07   수정 2021-06-06 13:09

대선 주자들 간 기본소득을 고리로 벌이는 신경전이 치열하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을 놓고서다. 여기에 더해 이 지사와 국민의힘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본소득과 오 시장의 안심소득을 두고 공수를 주고받았다. 기본소득 문제가 차기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을 예고한 것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은 재산 규모와 소득, 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다. 지급 방법은 지역 화폐다. 이 지사는 단계적인 구상을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연 50만원(25만원씩 연 2회 지급)부터 시작해 중기적으로는 100만원(25만원씩 연 4회 지급), 장기적으로는 매월 50만원씩 연 600만원을 주자는 것이다.

이 지사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1인당 연 100만원 정도는 우리 재정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그 이상은 성장과 조세 부담률 인상 속도를 고려해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금액 확대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해 공론화를 거쳐 순차적·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단계적 도입 시한은 못 박지 않은 것이다.

기본소득이 총수요 진작에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이 지사는 “그렇지 않다. 전 국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주면 소비자는 통닭을 시키고 치킨집은 닭과 기름을 산다”고 했다. 포퓰리스트라는 지적에 대해선 “그런 비난을 받는 이유는 다른 정치인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며 “포퓰리스트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내가 한 일 중 해서는 안 될 일은 없었다. 철저히 준비해 저항과 갈등이 있더라도 끝을 보는 게 내 정치 스타일”이라고 했다. 기본소득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대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총리는 이 지사를 협공하고 있다. 두 주자의 주장은 기본소득은 재정 여건상 시기상조이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 전 총리는 ‘가성비’를 들이대며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공격했다. 1년에 100만원을 지급하려면 50조원 넘게 드는데 올해 우리 예산이 558조원 중 10% 가까운 돈이다. 이를 어디에서 조달하느냐는 것이 정 전 총리의 공격 포인트다. 정 전 총리는 “준다고 해도 한 달 8만원 수준의 용돈에 불과해 소득이라고 하기에 민망하다”고 했다.

“돈을 똑같이 나눠 준다고 해도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소비 진작 효과도 없으며 미래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 반면 예산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은 정책으로 채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 전 총리 주장의 요지다.

그러면서 그는 ‘마이마이 복지’를 제시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복지 서비스다. 이 지사의 보편적 복지에 맞서는 선별적 복지다. 대표적인 것이 ‘미래씨앗통장’이다. 모든 신생아에게 20년 적립형으로 1억원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재원 마련 대책에 대해선 상속·증여세 활용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아무 대책없이 얼마씩 주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재원 방안 없다면 허구” “단계적 적용, 재정 우려 없어”
이 전 대표의 주장도 정 전 총리와 비슷하다. 그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엄청난 예산이 들지만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안 되고 그 반대라는 분석도 있다”며 “재원 조달 방안이 없다면 허구”라고 비판했다. 또 “모든 사람에게 돈을 똑같은 나눠 주면 양극화 완화에도 도움이 될 리 없고 오히려 역진적”이라고 했다.

그가 기본소득의 대항마로 내세우는 것은 ‘생애 주기별 소득 지원’이다. 소득·주거·노동·교육·보건의료·돌봄·환경·문화체육 등 8개 분야에서 최저로 보장할 수 있는 복지 기준을 의무적으로 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아동·청년·성인·노년 등 생애 주기별로 맞춤형 복지 제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광재 민주당 대선주자도 기본소득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제한된 지역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뒷감당 어마어마하고 위험천만하다”며 “1년에 1인당 100만원 정도를 주기 위해 필요한 50조원을 증세 없이 (예산 절감으로) 조달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 50조원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도 이 지사 공격에 가담했다. 그는 기본소득에 대해 “성장도 아니고 복지도 아닌 사기성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으로 경제를 망쳐 놓더니 이 지사는 소주성 v.2인 기본소득으로 경제를 망치려고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 지사 측은 반박한다. 재원 문제와 관련해 연간 50만원 지급 때는 26조원, 100만원 때는 52조원, 매달 50만원씩 지급 때는 312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하고, 단·중기적으로 일반 예산 절감, 조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지사 측의 주장이다. 매월 50만원씩 지급할 때는 탄소세·데이터세·로봇세 등 부과와 증세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부자 증세로 갈 수밖에 없고 이 역시 세금으로 국민 호주머니를 채워 주는 ‘조령모개(朝令暮改)’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중·장기적 기본소득은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기업이 성장하고 조세 수입이 증가하는 것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어서 재정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했다.
안심소득, 중위 소득 미달 가구에 미달 금액 절반 지원
이 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놓고 벌이는 공방도 치열하다. 오 시장의 안심소득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연소득이 중위소득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에 미달 금액의 절반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4인 가족 기준 월 소득이 288만원이라고 가정하면 중위소득(월 488만원)에서 모자라는 200만원의 절반인 100만원을 지급한다. 기본소득과 달리 선별 복지다.

오 시장은 올해 초 한국경제신문·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안심소득과 계층 이동 사다리로 정권 탈환의 기폭제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본소득제의 우파적 버전인 안심소득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미국 실리콘밸리 경영자들이 사회주의자여서 이런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휩쓸고 간 뒤 예상되는 일자리 대량 소실에 대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안심소득제 논의를 시급하게 할 수밖에 없다. 또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해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 지사는 안심소득에 대해 ‘차별급식 시즌2’라고 규정하고 “부자는 죄인이 아니다”며 “국민을 ‘세금만 내는 희생 집단’과 ‘수혜만 받는 집단’으로 나눠 대립시키고 낙인을 찍는 낡은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오 시장은 “기본소득은 ‘선심성 현금 살포’”라며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반박했다.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복지 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며 나름대로 재원 대책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조원, 수백조원의 재원 대책 치고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각자의 복지 공약들이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리 공론의 장으로 내놓아 검증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공방에서 벗어나 보다 면밀한 검토와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허실을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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