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눈 내리는 병원의 봄 - 최지은(1986~)

입력 2021-06-06 17:49   수정 2021-06-07 01:37

할 수 있는 것 없어
잠든 할머니 한번 더 재워도 보고
빈 병 물 채우는 소리만 울리는
밤의 복도
무엇이든 약속받고 싶던
지난겨울
창밖을 지나가고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中

병실에 누운 이를 생각하며 복도를 거니는 보호자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안도감이나 초조함도 있고, 무심히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슬픔도 있겠지요. 그래서 창문에 지난 계절의 눈이 섞여 내리는 것이겠지요. 삶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예고 없이 다가오곤 해서, 우리는 그래도 기쁜 쪽의 일을 조금 더 믿어보곤 합니다. 괜스레 물병을 채우고 잠든 사람의 잠자리를 매만져 보면서 말이지요. 모두에게 초여름의 기적이 다가오기를 바라봅니다.

주민현 시인(2017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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