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두둥실 날아오른 사랑과 희망의 화가, 샤갈

입력 2021-06-07 17:26   수정 2021-06-08 00:11


몸도 마음도 한껏 두둥실 피어오르는 것 같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런 신비로운 느낌을 받게 된다. ‘생일’(사진) ‘산책’ 등 그림 속 인물들 자체가 그렇다. 이들의 발은 땅 위에 있지 않고 하늘에 떠 있다. ‘생일’에선 남성이 여성에게 입을 맞추며 몸이 붕 떠 있고, ‘산책’에선 남성과 함께 산책하던 여성의 몸이 하늘에 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건 샤갈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이들의 상황과 표정에서 그 이유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덩달아 설레고 행복해진다. 샤갈은 말했다. “우리 인생과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갖는 단 하나의 색은 사랑의 색이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고.
상상력으로 구현한 독창적 작품 세계
우리 모두 유한한 삶, 그 캔버스 위에 어떤 색을 칠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때론 우울함과 절망의 색으로, 때론 분노의 색으로 얼룩지기도 한다. 샤갈은 하루하루를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삶과 캔버스를 가득 채워나갔다.

그는 가난한 러시아 노동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유대인들과 함께 지내며 가난과 차별을 이겨내려 노력했다. 샤갈의 어머니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그림을 좋아하는 아들을 공립학교에 보내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이후 샤갈은 한 후원자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접하고 배웠다. 그러면서도 특정 화풍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여기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파리를 정말 사랑했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도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떠올리며 ‘나와 마을’ 등의 작품을 그렸다.

그렇다고 본 것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에 무한한 상상력을 더해 화폭에 자유롭게 표현했다. 어린 시절 자주 접했던 유대인 설화, 성서도 영향을 미쳤다. ‘생일’ ‘산책’ 등에서 인물들이 하늘에 떠 있는 것도 설화와 성서 등에서 비롯됐다.

실제 샤갈의 마음에도 사랑이 가득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알고 지낸 벨라 로젠펠트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샤갈의 집안과 달리 부유했던 로젠펠트의 부모는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지만 둘은 결혼에 이르렀다. ‘생일’은 샤갈의 생일에 약혼녀 로젠펠트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자 황홀함과 환희에 빠진 순간을 담은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기억으로 재기하다
하지만 샤갈도 유대인들이 겪은 크나큰 역사적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독일의 히틀러는 샤갈을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꼽았다. 샤갈 부부는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간신히 도피했다. 그런데 1944년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급성 간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슬픔에 잠겨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샤갈은 사랑의 기억을 되살리고 희망을 품으며 다시 일어섰다. 1948년 파리로 가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루브르에도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다.

샤갈이 굴곡진 운명에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대가로 성장한 건 그 스스로 큰 사랑을 품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샤갈이 말년에 살았던 저택 응접실엔 ‘에펠탑의 신랑 신부’라는 작품이 걸려 있었다.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린 작품으로, 로젠펠트가 그의 곁에 있던 때였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고 추억할 줄 알았던 샤갈의 마음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빛나고 있는 게 아닐까.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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