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그와 공동 저술 활동을 해온 올리비에 시보니 교수, ‘넛지’의 공저자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노이즈: 인간 판단의 결함(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에서 사람들이 왜 수많은 판단에서 구조적으로 실수를 범할 수밖에 없는지 분석했다.
고도로 훈련받은 법률 전문가들의 판결은 항상 합리적일까? 연구자들은 208명의 미국 연방법원 판사에게 복수의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 적절한 형량을 제출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의 형량 평균은 15.3년이었는데, 최소값이 10년, 최대값은 20년으로 그 차이가 매우 컸다.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날 수 있을까? 20년을 구형한 판사를 만나는 피고인은 단지 재수가 없는 것일까?
왜 경제 상황을 놓고 A전문가는 낙관적으로, B전문가는 비관적으로 예측할까? 훗날 베스트셀러가 될 원고를 들고 이곳저곳 출판사 문을 두드렸던 작가를 왜 누구는 문전박대하고 누구는 알아보는 것일까? 모두 그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전문가들일 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 오류를 ‘편향(bias)’과 ‘잡음(noise)’의 두 부분으로 분해한다. 편향이란 특정 집단에 소속된 평가자들이 일관성 있게 과대평가 또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주민의 선호가 특정 정당 후보로 일관성 있게 쏠려 있는 현상이 그것이다. 잡음은 앞서 판사 예처럼 평가자마다 중심점으로부터 상하 편차가 크게 두루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잡음을 일으키는 요인은 매우 복잡하다. 인지편향, 앵커효과, 손실회피 등 행동경제학에서 밝혀낸 수많은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물론,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기준이나 대상에 대해 사람마다 서로 다른 순위를 부여하는 것도 한몫한다. 여기에 ‘상황 잡음(occasion noise)’과 ‘집단 잡음(group noise)’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더 불안정해진다. 이는 판단을 내리는 시점의 날씨, 몸 상태, 기분, 주변 분위기, 그 전후에 겪은 사건 등이 개입하는 현상이다.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상사에게 올라온 기안문은 대개 상황 잡음을 피하기 어렵다. 집단 잡음은 자신의 판단보다 주변 사람의 의견이나 선택을 따르는 현상인데, 유튜브 콘텐츠 조회, 정치 선거, 유력자가 참가한 대면회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잡음이다.
사실 개인 간 다양성과 특수성에서 기원하는 잡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있어 시장이 형성되고 진화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의견 불일치, 즉 잡음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일지 모른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시스템 잡음이다. 의사마다 한 환자를 두고 서로 다른 진단을 하거나, 판사마다 피고인에게 전혀 다른 형량을 구현한다면, 재수 없이 걸린 어떤 사람은 본의 아니게 그의 건강과 자유를 희생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육감 내지 직관을 내세워 자신의 지식 부족과 심리 불안을 감추려는 허세를 멈추고, 감정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 알고리즘 평가나 단순 통계모형을 보조 수단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조직, 특히 기업에서 경영 판단 오류를 줄이기 위해 ‘잡음 감사(noise audit)’ 제도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감사는 회계나 직무 규정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발상이 참신하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은 실시간으로, 또는 사후에 소정의 체크리스트에 응답한다. 그 결과를 행동경제학의 방법으로 분석하고 피드백함으로써, 의사결정의 편향과 잡음을 조금이라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정치 집단을 막론하고 해마다 의사결정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단지 소수 리더의 합리성에만 희망을 걸고 언젠가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송경모 <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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