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자들이 정말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상장폐지’일 겁니다. 주식이 어떤 이유에서건 더 이상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한다는 의미이니까요. 거래되지 못하는 주식은 자칫하면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ETF에 투자할 때는 어떨까요? ETF에도 상장폐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식의 상장폐지와는 많이 다릅니다. 한 마디로 거의 위험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식 상장폐지가 결정되면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정리매매 기간을 줍니다. 주식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죠. 거래일 기준으로 7일간 정리매매가 진행됩니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에는 주식의 가격제한폭이 사라진다는겁니다. 하루에 30%이상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주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ETF의 상장폐지는 주식과 달리 위험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개별 주식은 투자한 기업의 사업내용에 문제가 생길 때 주로 상장 폐지됩니다. 하지만 ETF는 투자한 기업과 별개로 ETF의 크기가 작고 거래가 활발하지못할 때 주로 상장 폐지됩니다. ETF가 투자한 기업들은 그대로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가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ETF의 상장폐지가 결정되더라도 ETF 가치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주식이 아니라 금, 은 같은 원자재, 채권 등도 마찬가지죠. 투자자들은 상장폐지 전까지 ETF가 담고 있는 자산 가치에 맞춰 매도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ETF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가 망해도 투자자는 ETF의 가치만큼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ETF가 투자하는 자산은 자산운용사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독립된 신탁업자인 은행이 보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부도를 냈다면 어떻게될까요. 약속한 수익은 물론 원금도 운용사에 돌려주지 못하겠죠. 이런 상황을 대비해 계약을 맺을 때는 주식 등을 담보로 잡습니다. 합성 ETF의 규모가 100억이라면 90억어치 자산을 담보로 잡는 식입니다. 이 경우라면 증권사가 망하면 자산운용사는 90억원어치의 담보를 받게됩니다. 10%는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다는거죠. 이 손실폭을 '거래상대방 위험평가액'이라고 합니다. 이 위험평가액은 한국거래소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거래소는 합성 ETF의 위험평가액 비율을 5%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증권사가 망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ETF 투자자들은 5%가량의 손실만 입는다는 얘기입니다.
상장폐지 전에 ETF를 팔았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ETF가 상장폐지된 날을 기준으로 ETF의 순자산가치에서 운용보수 등을 뺀 금액을 자산운용사가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상장폐지 시점에 ETF를 매도한 것과 동일한 결과입니다.
이렇듯 ETF가 상장 폐지된다고 돈을 잃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ETF 투자자에게 상장폐지가 달가운 소식은 아닙니다. 원하지 않는 시점에 투자를 그만두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장기투자를 계획하고 매수한 ETF가 주가 하락으로 순자산가치가 50억 미만으로 떨어져 상장폐지된다면 손실을 확정하게 됩니다.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수익을 낼 수도 있었을텐데요. 이런 경우라면 비슷한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있는지 확인해서 해당 ETF에서 투자를 이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니 투자하는 ETF를 고를 때는 거래량이 충분하고, 규모가 큰 상품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ETF 주가가 떨어져도 50억원 미만까지 상품이 쪼그라들지 않을 만한 상품이면 상장폐지 위험을 피할 수 있겠죠.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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