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적 측면에서 보면 36세의 이준석 후보가 당대표에 도전하며 내세우는 주장은 1971년 김영삼 의원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높이 들었던 ‘40대 기수론’과 다르지 않다. 정치 리더가 젊어져야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이준석 돌풍’을 가능하게 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동안 2030세대는 더불어민주당 지지가 강했지만 최근엔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있다. 2030의 반란 이유는 일할 기회조차 사라져 경쟁마저 없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불만과 평생 월급을 몽땅 모은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꿈이 돼 버린 서울의 아파트 가격 폭등을 초래한 부동산 정책이 제일 크다. 일자리를 만드는 경제 정책보다 기존의 일자리만 지켜주는 친노조 정책과 집값이 비싸니 집을 살 생각을 아예 말고 평생 임차인으로 월세 내고 사는 게 좋겠다는 식의 집값 대책에 분노했고, 아예 정권 지지를 접었다. 이런 2030의 좌절과 분노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인물이 필요했던 바로 그 시점에 이준석 후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2030의 분노를 이해하는 젊은 리더십의 필요와 더 나아가 나라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는 국민적 소망을 고려한다면 젊은 리더에게 국가 경영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요구는 정언명령이다.
하지만 핵심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질이다. 국가 운영의 통치학 내지는 치국 경륜을 영어로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라고 부를 때 나이는 조건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state’의 어원은 이탈리아 도시공동체를 뜻하는 ‘stato’에서 비롯했고, 그 통치자의 자질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능력으로서의 ‘명민함(prudenza)’뿐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따르면 명민함은 국가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공공성과 공동체 수호에 필요한 군사력을 갖추고 그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지혜를 의미한다. 이런 자질이 군주론 시대 군주의 덕목이라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주권자인 국민과 소통하고 의사를 결집하는 통합 능력이 필수다. 결국 리더십에 나이와 성의 구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올 하반기가 되면 정치권 전체가 차기 대선 후보자를 뽑는 대장정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면 대통령을 꿈꾸는 수많은 정치 리더에게서 찾아야 할 ‘나라를 살리는 대통령의 자질’은 무엇일까.
우선, 지도자다워야 한다. 리더(leader)는 ‘리드’하는 사람이다. 리드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을 가슴 설레게 하는 미래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비전으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강자에 굴하지 않는 공평한 법 적용”이란 ‘공정’을 보여줬다면, 이재명 경기지사는 “하늘이 무너져도 기본소득을 해서” 경제 공평을 실현하겠다고 한다.
다음은 국민 분열을 통합하는 포용력이다. 정치에서는 보수-진보의 대결정치, 내 편-네 편의 진영정치를 넘어 모두가 함께 사는 정치를 실현하는 너른 마음을, 경제에서는 양극화 해결을 위해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덧셈 경제를 실천할 수 있는 추진력을 의미한다. 또 필요한 덕목은 균형 감각이다. 지도자의 매 순간이 결정의 시간이다. 그 결정에서 지방과 서울, 빈자와 부자, 중소기업과 대기업, 서민층과 상류층, 여성과 남성, 신세대와 구세대를 동시에 배려하는 사고와 균형 감각을 타고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감각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거대한 체스판’을 읽어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중국엔 눈치만 보고, 일본과는 불화하고, 동맹국 미국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접근하면서 오로지 북한만 바라보는 586운동권의 ‘자폐 외교’로는 외교적 위험을 헤징하기도, 군사적 위기에서 영토를 보존하기도 버겁다.
지도자는 국민이 선택한다. 국민이 스스로 현명하고 자질 있는 지도자를 고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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