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담고 있는 의미는 한없이 무겁지만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일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에겐 고통과 노역을 의미했다. 누군가에겐 살아갈 목적이자 창조의 근원이었다. 일자리를 갈구하는 자가 있는 반면 끝없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업(業)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결코 쉽지 않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에 해법을 제시하는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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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거론되는 워라밸은 대안이 될 수도 없다. 불안과 우울함의 근원이라는 일의 문제를 방치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저 결코 쪼갤 수 없는 시간과 삶을 나눌 수 있다는 착각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저자는 직원들이 일 속에서 의미를 찾고, 소속감을 부여하며, 개인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일의 성격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삶이 일을 흡수하고, 일을 내 목적에 종속시키라는 외침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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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찾는 간절한 과정에서 일의 본질은 철학사의 핵심 과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과 근거로 적기에 실천하는 능력인 ‘프로네시스(실천 지식)’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봤다. 한나 아렌트는 자연을 인공의 세계로 변형시키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노동이라며 주목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창조성이 비롯되는 ‘행위’는 노동(일)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초콜릿을 먹거나 볼링을 할 때와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느끼는 쾌락이 같지 않다고 주장했던 존 스튜어트 밀이 과연 일의 가치는 어떻게 계산했을지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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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건축물이라는 흔적을 남기면서 이동하는 존재이며 건축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에서 일을 대하는 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일은 스스로 하는 것,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도 업의 본질을 향해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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