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바이오·K엔터까지…기업분할, 4차 산업혁명 '부스터' 됐다

입력 2021-06-11 17:48   수정 2021-06-18 16:16

2015년 8월 10일. 구글이 지주회사인 알파벳을 세우고 지배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알파벳 밑에 구글을 포함한 8개 사업 부문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월가에서는 “최대주주 지분만 늘리는 분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구글은 주가로 모든 걸 설명했다. 분할 전 5년간 두 배가량 올랐던 구글 주가는 분할 후 5년간 네 배 가까이 뛰었다. 각 사업 부문은 신사업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모회사는 빠른 의사결정 구조를 무기로 매년 수십 개의 인수합병(M&A)을 진행하며 4차 산업혁명 선두에 선 결과였다.

급증한 기업 분할
11일 SK텔레콤은 1.83% 오른 33만4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33만95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SK텔레콤은 전날 존속회사 SK텔레콤과 SKT신설투자(가칭)로 분할한다는 공시를 냈다. 신설 법인은 SK하이닉스 등 자회사를 중심으로 신규 투자에 집중한다. 인적 분할 후 증권업계에서는 SK텔레콤 주가 재평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SK텔레콤처럼 기업 분할 공시를 낸 상장사는 27개다. 지난해 59개에 이어 ‘분할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 늘었지만 개별 분할 내용을 살펴보면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

과거 기업 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구조 강화 또는 구조조정 수단 등으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개인투자자는 분할 공시를 악재로 해석하곤 했다. 들고 있는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분할 공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면서 기업 분할에 나서는 기업들의 셈법이 달라졌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적기에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것과 빠른 의사결정이 기업의 생존 여부를 가르는 요인이 됐다”며 “분할을 통한 사업 확장은 이미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경쟁력 강화에 초점
코로나19 기업들이 추진하는 신사업의 형태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본업과 연관성이 없는 사례도 많다. 본업과 신사업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기업들로선 가치 산정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인 LG에너지솔루션을 떼어낸 이유다. 신규 투자에 많은 자금이 필요하기도 하다.

주변 환경도 좋아졌다. 기업공개 시장이 뜨겁다. 분할 후 재상장 리스크도 줄었다는 뜻이다.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도 다양해졌다. 높은 성장성을 앞세우면 상장이 가능해졌다. 인재 확보에도 유리하다. 기존의 본업 구성원과 신사업 구성원의 인센티브 차이로 커지는 불만은 경영진으로서 골칫거리다.

최근 분할 공시를 낸 한 기업 관계자는 “분할 후 독립된 보상체계를 통해 신사업에 필요한 인재를 적극 영입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성공 사례 보니
과거의 성공 사례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분할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다. CJ ENM은 2016년 5월 드라마 부문을 분할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했다. 당시 스튜디오드래곤은 국내 유망 드라마 작가 등을 적극 영입하고 높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콘텐츠 확보에 주력했다. 스튜디오드래곤 시가총액은 3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효성그룹은 인적 분할을 통해 그룹 전체가 성장한 사례다. 2018년 6월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사업회사 4개(효성화학·효성티앤씨·효성첨단소재·효성중공업)로 회사를 쪼갰다. 이후 그룹 시총은 4조7000억원대에서 8조원대로 늘었다. 네이버도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분할 후 성공 사례가 계속 쌓이면서 당분간 분할 선호는 계속될 전망”이라며 “신사업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분할이라면 주가에도 부정적이지 않고, 투자업계 관점에서도 긍정적인 재료”라고 말했다.

■ 인적 분할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의 기업분할. 존속 법인과 신설 법인 간 주식 배정 비율 산정이 주주들로선 중요하다.

■ 물적 분할

모회사의 특정사업부를 신설 회사로 만들고 이에 대한 지분을 100% 소유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형식의 기업 분할 방식. 신사업을 분리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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