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龍)’으로 주목받다가 중국의 급부상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대만(臺灣·Taiwan). 최근 대만이 반도체 경기 활황과 지정학적 국제정세 변화에 힘입어 국가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남한의 3분의 1 면적(3만6193㎢)과 2분의 1도 안 되는 인구(2020년 기준 2357만 명)인 섬나라 대만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소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죠.
그러던 대만이 꾸준히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제가 불황에 휩싸였지만 대만은 3.1% 성장하며 성장률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2.3%)을 앞질렀습니다. 중국 출신 화교가 많고 중국 의존도가 큰 싱가포르가 지난해 경제성장률 -5.4%로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중국에 반환된 홍콩 역시 -6.1%로 국가보안법 반대 집회가 시작된 2019년(-1.2%)에 이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 것과 대조됩니다. 올해 대만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은 4%대를 기록한다면 1인당 국민소득도 3만1685달러에 달해 18년 만에 한국을 재역전할 수도 있습니다.
대만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입니다. 대만 TSMC는 세계 1위의 파운드리 업체이고 미디어텍은 미국 퀄컴에 이은 세계 2위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업체입니다. 파운드리(foundry)란 다른 업체가 설계한 반도체 제품을 위탁받아 생산하는 업체이고, AP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처럼 스마트폰의 핵심 연산장치입니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활황세를 보이면서 대만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이 70% 이상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메모리 반도체는 전체 반도체 시장의 30%에 불과합니다. 반도체 설계나 파운드리 등 70%인 비메모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4%에 불과하죠. TSMC는 지난달 1일 향후 3년간 1000억달러(약 110조원)를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는 등 추격에 나선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죠. TSMC는 파운드리라는 사업을 처음 도입했고, 매출의 절반을 투자하거나 단기간에 주문량을 공급하는 등 경쟁력을 끌어올렸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아가 4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통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다짐했습니다. 대만해협은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에 있는 400㎞, 폭 180㎞의 바다입니다. 중국은 대만해협이 자기네 앞바다라며 군함과 잠수함을 배치했고, 이에 맞서 미국도 군함을 파견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만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적 전초기지일 뿐 아니라 반도체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을 좌우할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세계적 반도체 공급망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며 국가적 위상을 한껏 드높이고 있습니다.
물론 대만은 TSMC 등 몇몇 기업을 제외하면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어 글로벌 기업을 여럿 보유한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미국과 대만의 동맹은 최근 한층 강화된 모양새지만 국제 정세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대만이 앞으로도 강소국 지위를 유지할지 계속 지켜봐야겠습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② 대만과 달리 한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위상이 약한데 비메모리 분야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③ 중국을 의식해 대만 문제 개입을 꺼리던 한국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 안정에 공감을 표했는데,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