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이 끝난 지 1년3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발이 묶여 있어요.”
김모씨는 2018년 5월 서울 화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들어갔다. 문제가 생긴 건 지난해 2월. 김씨는 집주인에게 “만료일에 맞춰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집주인은 80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임대사업자 한모씨 남매다.
피해가 발생한 집들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에게 한씨 남매를 ‘건물 부자’로 소개했다. “화곡동에만 빌라 몇 채를 갖고 있고, 전국에 부동산 수십 채를 갖고 있다”고 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등기부등본에 7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데도 김씨에게 “집주인이 부자라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남매는 부자는커녕 빈털터리였다. 김씨는 소송에 이겨 남매의 은행 계좌를 압류했지만,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은 하나도 없었다. 가스·수도요금도 300만원 밀려 있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추가 비용에다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세입자 조모씨는 2019년 입주할 때 받은 전세대출을 연장해 매달 이자를 내고 있다. 김씨는 “다음 세입자를 구해오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집주인 말에 네 번이나 세입자를 구해왔지만 집에 걸린 가압류가 해결되지 않아 계약이 모두 불발됐다.
소송이나 경매를 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남매가 화곡동에 소유한 35채의 집에 잡혀 있는 근저당권은 총 25억2650만원이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 간 이전 세입자들이 설정한 임차권, 가압류 내역은 15억7350만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부분 근저당보다 후순위다. 집을 경매에 넘겨도 남매의 빚을 청산하면 세입자에게 돌아올 돈이 남을지 알 수 없다. 문제는 대부분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세금 사기 문제가 불거진 2019년 이전에 계약해 보증보험의 존재나 필요성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갭투기대응시민모임’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금 사고 피해자들의 82.4%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았다.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금을 보증보험이 대신 세입자에게 변제해주는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대위변제 금액은 2017년 34억원에서 지난해 4415억원으로 130배로 불어났다. 사고 건수 역시 2017년 33건에서 지난해 2408건까지 치솟았다.
전세금 사고가 집중된 지역은 서울 강서구·양천구, 경기 부천시 등이다.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거의 없는 신축 빌라가 많고, 주택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지역이다. ‘무자본 투기’도 성행한다. 신축 빌라 중에는 시장에서 형성된 실거래가를 확인하기 어려운 매물이 적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매매가보다 더 많은 전세보증금을 받는 식이다.
전세금 사고는 3억원 이하 매물에서 주로 발생한다. HUG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발생한 사고 5279건 중 89.1%(4703건)가 이 금액대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억원 이하 주택의 임대차 계약에서 반드시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김모씨는 2018년 5월 서울 화곡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들어갔다. 문제가 생긴 건 지난해 2월. 김씨는 집주인에게 “만료일에 맞춰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연락했지만 답이 없었다. 집주인은 80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임대사업자 한모씨 남매다.
‘건물 부자’라더니 수도요금도 못 내
지난 11일 한국경제신문 취재 결과 한씨 남매는 세입자 25명에게 전세보증금 총 27억3850만원을 돌려주지 않고 연락을 끊었다. “이들 남매의 부동산이 80여 채에 이르는 만큼 추가 피해자가 생겨날 공산이 크다”는 게 지역 부동산 업계의 관측이다.피해가 발생한 집들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세입자들에게 한씨 남매를 ‘건물 부자’로 소개했다. “화곡동에만 빌라 몇 채를 갖고 있고, 전국에 부동산 수십 채를 갖고 있다”고 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등기부등본에 7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데도 김씨에게 “집주인이 부자라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남매는 부자는커녕 빈털터리였다. 김씨는 소송에 이겨 남매의 은행 계좌를 압류했지만,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은 하나도 없었다. 가스·수도요금도 300만원 밀려 있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추가 비용에다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세입자 조모씨는 2019년 입주할 때 받은 전세대출을 연장해 매달 이자를 내고 있다. 김씨는 “다음 세입자를 구해오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집주인 말에 네 번이나 세입자를 구해왔지만 집에 걸린 가압류가 해결되지 않아 계약이 모두 불발됐다.
소송이나 경매를 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남매가 화곡동에 소유한 35채의 집에 잡혀 있는 근저당권은 총 25억2650만원이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이사 간 이전 세입자들이 설정한 임차권, 가압류 내역은 15억7350만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은 대부분 근저당보다 후순위다. 집을 경매에 넘겨도 남매의 빚을 청산하면 세입자에게 돌아올 돈이 남을지 알 수 없다. 문제는 대부분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세금 사기 문제가 불거진 2019년 이전에 계약해 보증보험의 존재나 필요성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갭투기대응시민모임’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금 사고 피해자들의 82.4%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하지 않았다.
잇따르는 갭투기꾼 ‘먹튀’
갭투기꾼들의 전세금 ‘먹튀’는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최근 수년간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화곡동(사진)에선 2019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강모씨 사건도 있었다. 강씨는 빌라 등 283채를 소유해 ‘큰손’으로 불렸지만 실은 전세금을 돌려막기하던 빈털터리였다. 최근에는 임대사업자 중 가장 많은 집을 소유한 김모씨(892채)와 397채를 보유한 ‘세 모녀’ 등의 ‘전세금 먹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금을 보증보험이 대신 세입자에게 변제해주는 사례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 대위변제 금액은 2017년 34억원에서 지난해 4415억원으로 130배로 불어났다. 사고 건수 역시 2017년 33건에서 지난해 2408건까지 치솟았다.
전세금 사고가 집중된 지역은 서울 강서구·양천구, 경기 부천시 등이다. 전세가와 매매가 차이가 거의 없는 신축 빌라가 많고, 주택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지역이다. ‘무자본 투기’도 성행한다. 신축 빌라 중에는 시장에서 형성된 실거래가를 확인하기 어려운 매물이 적지 않다는 점을 악용해 매매가보다 더 많은 전세보증금을 받는 식이다.
전세금 사고는 3억원 이하 매물에서 주로 발생한다. HUG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4월까지 발생한 사고 5279건 중 89.1%(4703건)가 이 금액대였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억원 이하 주택의 임대차 계약에서 반드시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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