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014년 “가상현실(VR) 기술은 모바일 다음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팀 쿡 애플 CEO도 2016년 “증강현실(AR) 기술은 앱스토어만큼이나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아직 그들의 예상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예언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투자 강도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페이스북·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은 유망 기업을 닥치는 대로 인수하는 것도 모자라 한국을 포함, 전 세계에서 우수 인재를 ‘싹쓸이’ 하다시피 하고 있다. 메타버스산업 핵심인 AR·VR 등 확장현실(XR) 시장이 미국 빅테크 기업의 ‘독무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애플의 메타버스 투자도 무시무시하다. 2015년 이후 인수한 메타버스 기업이 10개가 넘는다. 애플이 인수한 XR 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면 소프트웨어(SW), 하드웨어(HW), 카메라, 콘텐츠, 광학 등 XR의 모든 구성 요소를 망라한다. 기업 내부에 XR 사업의 ‘수직계열화’가 완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 역시 2014년 AR 소프트웨어 개발사 퀘스트비주얼 인수를 시작으로 아이플루언스, 아울캐미랩스, 노스 등 XR 기업을 잇따라 사들였다.
실감나는 XR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디스플레이, 반도체, AI 등 기술과 인력도 필요하다. 빅테크 기업이 이들 분야에서 XR 개발을 위해 스카우트한 사례까지 합치면 유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XR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페이스북의 XR 인력은 1만 명 이상이고 애플, 구글도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며 “공격적인 M&A, 인력 스카우트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대기업도 XR 전문 인력이 많아야 수십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XR 기업 인력은 2019년 기업당 평균 10.1명에 그친다.
메타버스업계 관계자는 “이직은 개인의 선택이니 막기는 어렵다”면서도 “우수 인재가 국내에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XR 스타 기업을 키우고 SW·HW·디스플레이·콘텐츠 등 각 분야 기업의 유기적 협업이 이뤄지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공동 전선을 구축해 빅테크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안상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은 “아직 초기 단계인 메타버스 시장이 커질 때까지 기업들이 쓰러지지 않게 정부가 버팀목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 간 협업이 필요한 정부 과제를 많이 만들고 XR 기술 연구개발(R&D)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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