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e커머스 출혈경쟁 안한다"…'100년 기업' 현대百의 길

입력 2021-06-14 19:00   수정 2021-06-15 00:55

현대백화점그룹은 국내 유통 ‘빅3’ 가운데 가장 후발주자다. 롯데, 신세계라는 양 강자 사이에서 늘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초반 대형마트 시장 진출에 실패한 직후에는 업계에서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요즘 유통업계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경쟁사들과 달리 e커머스(전자상거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정중동(靜中動)’ 경영으로 내실을 다져가는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1971년 매출 8400만원짜리 서울 압구정 슈퍼마켓에서 출발한 현대백화점은 50년 만에 매출 20조원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100년 기업 비전’ 제시한 정지선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은 14일 창립 50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그룹의 50년 역사를 한 줄로 압축하면 ‘과감하고 열정적인 도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반세기 동안 축적된 힘과 자부심을 통해 100년, 그 이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올초 ‘2030 비전’ 발표를 통해 총매출 40조원의 종합생활문화기업 목표를 제시했다. 뷰티, 헬스케어, 바이오, 친환경, 초고령화 등 5개 신수종 분야에 대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외형을 현재의 두 배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유통 및 투자은행(IB)업계에선 정 회장의 ‘뚝심 경영’에 주목하고 있다. 한 대형 사모펀드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뛰어든 롯데쇼핑과 신세계가 사운을 걸고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데 비해 현대백화점은 비(非)유통 분야 M&A로 조용히 사세를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은 2012년 리바트 인수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총 10건,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M&A에 성공했다. 아직 약 1조7000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추가 M&A 가능성이 높다.
‘유통전쟁’ 생존을 위한 ‘현대웨이’
현대백화점그룹의 조용한 성장엔 정 회장 특유의 용인술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번 일을 맡기면 끝까지 믿는 경영 스타일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2012년 인수한 한섬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식구가 된 지 3년차에도 이익이 줄자 ‘한섬은 현대백화점의 계륵’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정 회장은 인수를 지휘한 김형종 당시 한섬 부사장(현 현대백화점 대표)을 2016년 사장으로 진급시켰다.

한섬은 디자이너 수를 인수 당시의 두 배인 500명가량으로 늘리는 역발상 투자에 나섰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수출이 살아나면서 수혜주로 거듭났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신세계는 외부 출신 비중이 높아 기업문화가 효율과 숫자를 중시하는 편”이라며 “현대백화점그룹은 조직 변화는 적지만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는 문화”라고 전했다.

정 회장은 ‘100년 기업’을 위한 조건으로 ‘사회적 가치에 기여하는 회사’를 강조했다. 그는 이날 기념사에서 “수십 년간 성공 가도를 걷던 기업도 전략과 실행에서 엇박자가 나거나 자신의 성과에만 연연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탓에 급속히 쇠퇴하는 상황을 지켜봐왔다”며 “기업의 성장과 사회적 가치 추구가 선순환하도록 고객과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를 적극 수용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 현대백화점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를 위해 이사회 산하에 ‘ESG 경영위원회’를 설치했다. 사내에 대표이사 직속의 ESG 전담 조직(ESG 추진 협의체)도 신설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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