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사보다 좋다던 펀드매니저, 20년째 초봉 제자리…개인투자도 못해

입력 2021-06-15 17:39   수정 2021-06-23 16:55

2000년대 들어 펀드매니저는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결혼 시장에서 의사, 변호사와 함께 최선호 직업으로 꼽혔다. 펀드매니저라면 ‘이적료 1억원+연봉 1억원’은 기본으로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2021년 펀드매니저의 상황은 다르다 못해 처참하다. 과거의 영광을 논하기에도 부끄러운 처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현재 펀드매니저의 대졸 신입사원 초봉은 4000만~5000만원이다. 20년 전과 똑같은 수준이다. 인센티브가 거의 없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줄었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퇴사하는 주니어 매니저들의 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업계에서는 펀드매니저들의 줄 퇴사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숫자를 중요시하는 금융맨에게 돈은 중요한 유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모운용사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펀드매니저가 있지만 대부분은 인센티브가 거의 없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성과를 내더라도 인센티브가 많지 않고, 성과가 크지 않으면 인센티브 같은 것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직업 특성상 개인적인 주식 투자도 금지돼 있다. 연봉과 상승률은 낮은데 자산을 불려갈 수단이 없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로 변신하는 펀드매니저가 속출하는 배경이다. 3년차 사모펀드 매니저는 “주식을 좋아해서 이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세 상승장에서도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며 “최근 개인 투자를 하기 위해 그만두는 후배가 많다”고 했다.

인력 유입도 줄어들고 있다. 대학교 주식 동아리에서도 펀드매니저보다 개인사무소를 차리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다. 한 운용사 대표는 “과거에는 주식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운용사에 입사했는데 요새는 선배가 열어놓은 사무실에 들어가는 후배들이 많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펀드산업의 불황이다. 직접 투자가 급증하면서 주식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최근 1년간 9조3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운용 수수료로 돈을 버는 매니저 입장에서 펀드 해지만큼 최악의 악재는 없다. 펀드 해지가 몰리면 어렵게 선별한 종목도 강제로 매도해야 한다. 펀드매니저들의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

회사 내에서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운용사들이 상장지수펀드(ETF)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종합자산운용사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한 운용사 대표는 “운용사들은 최근 액티브 펀드보다 ETF, 대체투자, 부동산으로 사업을 이동하고 있다”며 “임금을 높여 뛰어난 인력을 끌어올 생각도, 젊은 매니저를 교육해서 키울 생각도 없다”고 했다.

스타 매니저들도 하나둘 업계를 떠나고 있다. 지난 1월 배준범 한국투자밸류 코어밸류운용본부장이 사표를 냈다. 작년에는 이하윤 전 마이다스에셋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최웅필 전 KB자산운용 밸류운용본부장, 정광우 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차장이 퇴사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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