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버스정류장만 아니었다 할지라도 운전자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뭐가 무너지면 엑셀러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 사실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인데 하필 버스정류장 앞에 이런 공사 현장이 되어있으니 그게 정확히 시간대가 맞아서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광주 철거건물 붕괴 참사에 대해 운전자의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버스 기사 가족이 "분노가 치민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자신을 버스 기사의 딸이라고 밝힌 이 모 씨는 18일 "송 대표의 발언으로 우리 가족은 또 한 번의 상처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 씨는 "송 대표 발언의 의도는 알겠으나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매우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면서 "아버지께서는 20년 가까이 성실히 일을 해오셨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크나큰 사고로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증과 후유증에 시달리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이 씨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도 많이 힘든 상태인데 송영길 대표의 가벼운 발언을 보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면서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당대표자라는 자리에 계신 만큼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저희 아버지뿐만 아니라 유족과 피해자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 달라"며 "대한민국에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고 모든 피해자가 쾌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송 대표는 광주 철거건물 앞 버스 정류장 위치를 옮기지 않은 게 아쉽다는 취지로 말하다 "운전자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액셀러레이터만 밟았어도 (희생자들이) 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참사 책임을 버스 기사에 떠넘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송 대표는 논란이 일자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그럴 리가 없다. 오해하지 말아달라. 악의적인 언론 참사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
송 대표는 "버스정류장이 없었다면, 그래서 버스가 바로 그 시간에 정차하고 있지만 않았다면, 혹시 버스가 사고 현장을 지나더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였으면 운전기사는 본능적으로 승객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했을 거라는 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장 기자는 제가 드린 말씀 중 일부를 잘라내서 기사를 송고했다. ‘엑셀러레이터만 조금 밟았어도’라는 대목만 키웠다"라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이건 ‘학동 참사’를 두세 번 거듭하는 ‘언론 참사’와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이 오보를 근거로 저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 본의와는 전혀 다른 오보였어도 민주당을 믿고 울분을 풀었던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언론의 오보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민주당 대표가 되겠다. 혹여, 잘못된 보도에 상처 입지 않기를, 호남의 아들인 송영길이 그런 정도로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운전기사 이 모(58)씨는 손가락, 가슴 등에 골절상을 입었고, 뇌출혈 증상도 보이고 있다. 이 씨는 앞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내 머리하고 손이 (구조물에) 딱 껴서 구조될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며 “버스 뒤편에서 승객들이 ‘살려줘, 살려줘’ 울부짖는데, 내가 정말 미치겠더라”고 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송 대표 발언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가슴 아픈 참사의 책임을 애꿎은 피해자에게 전가하지 말라"며 "즉시 피해자들과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송 대표는 사고 현장을 가리켜 ‘영화의 한 장면 같다’라고도 했다. 이게 중대 재해 사고를 바라보는 민주당의 인식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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