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건은 거물 블로거 램지(올리버 플랫 역할)가 요리사 칼(존 파브로)의 음식을 먹고 남긴 리뷰 한 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실망했다. 칼의 추락을 보여주는 요리. 별 두 개.’ 혹평에 상처 입은 칼은 트위터로 램지를 공개 저격한다. 둘의 설전은 SNS를 통해 생중계되고 상황은 칼이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간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SNS 초짜였던 요리사가 하룻밤 새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문제는 칼이 새 메뉴를 시도할 때마다 태클을 거는 레스토랑 사장. 기존 메뉴대로 가라는 사장의 요구에 칼은 항변한다. “거물이 오니까 좋은 메뉴를 내야죠. 지금 메뉴는 창의성이 없어요.” “아니. 거물이니까 안정적으로 가. 그 사람 블로그가 대기업에 1000만달러(약 119억원) 받고 팔렸어. 모험하지 마.”
칼과 사장이 램지를 신경 쓰는 이유는 그만큼 램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램지처럼 온라인 콘텐츠로 유행을 이끄는 사람을 ‘인플루언서’, 이들을 이용한 홍보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라고 한다. 지난해 전 세계 기업들이 인플루언서에게 지급한 금액은 100억달러(약 11조8340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5년 5억달러(약 5959억원)에서 시장이 빠르게 커졌다. 사장의 겁박에 가까운 설득에 칼은 신메뉴를 포기한다.
“아빠, 밤사이에 팔로어가 1653명 생겼어.” “팔로어가 뭐냐”고 묻는 칼에게 초등학생 아들은 설명한다. “1653명에게 아빠 글이 보인다는 거야.” 램지를 공개저격하면서 하룻밤 새 유명인이 된 것이다. 인플루언서 시장에선 구독자 수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메가 인플루언서’(구독자 100만명 이상)들은 아예 콘텐츠 기업과 전속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 램지의 블로그를 대기업이 거액에 사들인 것처럼 한 회사가 해당 인플루언서의 콘텐츠 유통을 독점하는 것이다.
램지와의 설전으로 트위터 팔로어가 2만명까지 늘어난 칼이 “계정을 삭제하겠다”고 하자 홍보 전문가는 만류한다. “아니, 왜 지워요? 이게 다 돈인데.” 미국 마케팅업체 이제아에 따르면 파워블로거의 게시물당 평균 광고비는 2014년 407달러(약 48만원)에서 2019년 1442달러(약 171만원)로 세 배가량 늘었다. 구독자가 많은 계정일수록 단가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
칼이 일종의 ‘밈(meme·유행 요소를 모방 또는 재가공해 만든 콘텐츠)’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밈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만든 용어로 유통업계에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밈노믹스(meme+economics)’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가수 비의 ‘1일 3깡’이 밈으로 소비되자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홍보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홍보 전문가는 칼에게 “요리검증 프로그램 MC 자리는 따놨다”고 위로하지만 칼은 그저 괴로울 뿐이다. 이 일로 레스토랑에서도 잘렸다. “지금 사람들이 절 비웃는 건가요, 아니면 공감하는 건가요.” “둘 다요.” 밈노믹스의 특징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부른다. SNS 인증샷 열풍도 다른 사람의 소비를 따라하고 싶다는 심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다. 칼의 푸드트럭은 ‘에펠탑 효과’까지 누린다. 자주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상품의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용어다. 칼과 아들은 몇 달간 함께 트럭을 타고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정을 나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②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나 밈노믹스가 광고, 판촉이벤트 등 전통적 마케팅 기법보다 효과적일까.
③ 짧고 강렬했던 첫인상이 사람·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첫인상 효과’와 처음에는 싫거나 무관심했지만 자주 접하면서 호감도가 높아지는 ‘에펠탑 효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제품 판매에 유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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