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5시. 저녁 시간 영업을 앞둔 서울 익선동 샤부샤부집 ‘온천집’ 앞에 20~30명이 줄을 섰다. 사장인 유미영 씨(48·사진)와 직원들이 “파이팅” 구호를 짤막하게 외친 뒤 문을 열고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적은 예약자들을 불렀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가게 테이블 25개 중 21개가 찼다.
이름만 들어서는 목욕탕 같은 온천집은 핫플레이스인 익선동에서도 명물로 꼽히는 식당이다. 일본 온천여행이라도 간 듯 ‘눈 덮인 온천을 보며 정성 가득한 식사를 먹는 곳’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유명해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온천집’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2만7000여 건. 한 달 매출은 2억원대다. 2019년 12월 가게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코로나가 터졌지만 대유행시기인 8월과 11월을 제외하고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맛집에 등극했다.
유 사장이 꼽은 인기 비결은 ‘공간에 대한 진심’이다. “식당을 평가하는 기준이 오로지 맛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식당도 결국 공간이니까요. 식사하는 동안 눈에 담기는 편안한 풍경과 공들인 음식, 직원들의 따뜻한 응대 등으로 온천집의 정성 가득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테이블은 온천을 둘러싼 ‘ㅁ’자 구조로 배치했다. 전체 테이블 25개 중 4개를 제외한 21개에서 온천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직원들이 무거운 샤부샤부용 냄비와 도시락통을 들고 다니기엔 쉽지 않은 구조다. 가게의 정체성인 온천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수고다. 유 사장은 “운영의 효율성보다는 콘셉트에 충실했다”며 “식당 가운데에 테이블을 놨다면 직원 동선도 편하고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겠지만 손님이 무엇을 원할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음식에도 공을 들였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1인 된장 샤부샤부다. 된장 사골 육수에 고기와 채소 등을 익혀 날달걀에 적셔 먹는다. 일본식 사각 도시락통 세 개에 차돌박이, 채소 모둠, 소스가 각각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소스와 반찬을 담은 그릇들도 꽃 모양 등으로 제각기 다르다.
유 사장의 머릿속에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온천이었다. 20대 후반 때 갔던 규슈에서 처음 경험한 온천은 ‘목욕의 신세계’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노천 온천, 목욕 후 받는 정성 가득한 한 끼가 예술처럼 느껴졌다. 눈 덮인 온천을 보며 따뜻한 식사를 하는 식당을 만든 이유다. 2019년 9월 대전 지점을 열어 반응을 살핀 뒤 12월 익선동에 터를 잡았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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