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에서 오가는 흔한 대화다. 조만간 이런 대화를 직원이 아닌 ‘인공지능(AI) 은행원’과 할 수 있게 된다. 신한은행이 오는 9월부터 40개 점포의 창구에 AI 은행원을 본격 도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도 연내 AI 은행원을 점포에 도입할 계획이다. HSBC은행과 중국 보하이은행 등이 AI 은행원을 도입했지만 국내 은행 창구에 AI가 등장하는 건 처음이다.
신한은행은 서소문점 등에 ‘디지털 데스크’란 창구를 운영 중이다. 이 창구엔 PC 화면 크기의 디스플레이가 있고, 직원이 화상으로 고객과 상담한다. 9월부터는 디지털 데스크에 AI가 나타난다. AI의 모습 자체는 실제 은행원의 얼굴이다. 미리 녹화한 은행원의 영상을 기반으로 만든 AI다. 은행원의 실제 말투, 몸짓, 목소리를 AI로 학습해 재현한 일종의 ‘디지털 휴먼’이다.
기존 디지털 휴먼이 일방성에 그쳤다면, AI 은행원은 고객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다. 신한은행이 도입하는 AI 솔루션은 사람 음성을 95% 이상 이해하도록 훈련됐다. 인식 속도는 0.5초 이내다. 웬만한 대화를 끊김없이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도입 초기 AI 은행원은 직원과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AI 뱅커의 데스크 화면엔 화상 대화창이 가장 먼저 뜬다. 계좌 개설, 이체·송금, 금융상품 안내, 비밀번호 변경 등 업무에 대한 질의가 오면 AI 은행원이 등장해 상담한다. 주택담보대출이나 고객 맞춤형 상품 추천 등 복잡한 업무는 기존 은행원이 그대로 담당한다. AI 은행원과 고객의 소통이 매끄럽지 않을 때도 직원이 직접 상담하는 화면으로 넘어간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AI 은행원 도입 이후에도 성능을 향상시켜 2025년까지 AI가 대부분 업무를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고객이 직원과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를 대비해 AI 은행원은 일상 대화도 어느 정도 훈련시킬 계획이다. “화장실 어디 있어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 등 정도의 대화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서류 작성이 필요한 단계에선 터치 스크린으로 전환되는 기능도 갖출 예정이다.
국민은행도 AI 은행원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신사옥에 ‘AI 체험존’을 설치하고 AI 키오스크(사진)를 선보였다. 김현욱 전 아나운서의 모습을 한 AI 은행원이 간단한 금융 상담을 해준다. AI 키오스크를 좀 더 고도화한 뒤 연내 일선 점포 창구에 AI 은행원을 앉히는 게 국민은행의 계획이다. 다만 AI 솔루션 공급 업체와의 협상이 상대적으로 늦어 도입 시점은 연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도 AI 스타트업 라이언로켓과 업무협약을 맺고 AI 은행원을 개발하고 있다. 내년께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금융이 발달하면서 영업점을 찾는 고객이 매년 7~8%씩 줄고 있지만, 여전히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고객도 많다”며 “영업점에서도 디지털 기술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복잡한 금융상품, 약관 등에 대한 설명은 방대한 내용을 외울 수 있는 AI 활용이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고 했다.
서민준/빈난새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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