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공정위 본연의 기능을 정의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경쟁당국이다.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정 거래를 촉진하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독점규제’의 권한이 붙었다. 하지만 지금의 공정위는 외부 견제나 내부 통제를 받지 않는, 그 자체가 ‘권한 독점’ 조직이 되고 있다. 기업들의 푸념이 아니다. 경제부처 내에선 공정위가 정부와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집단’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두산그룹에 대한 계열사 부당지원 조사 건이 단적인 예다.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에 놓인 계열사 두산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이 부당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공정위가 받아들일지가 핵심이다.
두산은 지난해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으면서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히려 산은 요구를 너무 잘 따라서 다른 기업으로부터 “선례가 되면 안 되는데 부담스럽다”는 얘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공정위가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두산중공업에 자금을 지원한 산은 입장은 무엇이 되나.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공정위가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금융권에선 “이런 식이면 어느 기업이 공정위 조사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나”라는 한탄이 나온다. 공정위의 행정처분 5건 중 1건꼴로 기업들이 불복 소송을 제기하고, 최근 5년간 기업에 되돌려 준 과징금만 1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이 공정위의 권한남용을 방증한다.
이유가 뭘까. 공정위의 운영 방식에 구조적 결함이 있다. 공정위는 합의제로 운영된다지만 실상은 다르다. 위원회의 의사 결정은 재적위원 9명 중 5명의 찬성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미 과반인 5명(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3명)은 공정위 공무원이다. 자체 조사한 사건의 사법적 판단을 스스로 내리는 구조다.
이뿐만 아니다. 비상임위원 4명은 공정거래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친공정위 인사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1급 상임위원의 임기는 3년이지만, 대부분 1년 남짓 하고 물러난다. 공정위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용도다.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공정위가 ‘외눈박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공정거래법에는 비상임위원 자격 요건으로 ‘기업 경영 및 소비자보호활동에 15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는 자’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단 한 번도 기업인 출신 비상임위원을 둔 적이 없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소비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로 정평이 나 있는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은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추천한다. 임기는 7년. 대통령 임기(4년)보다 길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 현재 5명의 위원 중 3명은 월가의 투자은행과 델타항공 등 민간기업, 맥킨지 컨설팅에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판사 출신과 공정위 전관 교수 등이 번갈아 비상임위원을 맡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재량권을 남용하고, ‘고무줄 잣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보다 시민단체의 압력을 받아 대기업 규제기관 역할에 더 치중한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그들만의 리그’가 돼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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