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한국 기업들에 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ESG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이에 더해 2021년은 많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ESG를 기업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SG 경영의 목적은, 기업이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비지니스 규범하에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더 많은 수익을 최소 리스크에서 안정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다.
ESG 경영의 실천을 위해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중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즉 ‘환경(E)’ 측면의 대응이 올해 우리 기업들에 특히 큰 화두가 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탄소중립 전략, 스코프 3(scope 3: 사업장 외 간접 배출까지 포함한 탄소배출량)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대응 등의 컨설팅 프로젝트에 대해 문의해 온다. 이러한 각각의 영역은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어젠다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로드맵을 짜기 위한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기후변화는 기업의 재무제표에 영향을 주게 돼 기후변화 리스크가 재무 리스크로 나타나게 된다. 이 리스크에 기업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전략하에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지 이해당사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사전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1년 ESG의 핵심 어젠다는 TCFD 실행
TCFD는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를 의미하는데, 2015년 자발적이고 일관성 있는 기후 관련 정보 공개를 위해 주요 20개국(G20)의 요청에 의해 국제결제은행(BIS))의 금융안정위원회(FSB)에서 설립한 국제 협의체다. TCFD는 기후변화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했으며, 기후변화 리스크를 공시하는 국제적인 합의에 기초한 프레임워크로 볼 수 있다. TCFD는 2017년 기후 관련 재무적 영향에 대한 정보 공개를 위한 권고안(recommendation)을 발표하고 기업들에 구체적인 액션을 요구하고 있다. 즉, 기업이 기후변화와 관련해 직면한 리스크 및 기회 요소를 파악하고 이를 리스크 관리체계와 전략에 반영한 후, 예상되는 재무적 영향을 수치화해 외부에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TCFD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규제기관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 지지 선언을 할 수 있으며, 현재 전 세계 86개 국가에서 2300개 이상의 기관이 TCFD 지지 선언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기업, 정부, 금융기관 등을 포함해 50개 이상의 기관이 지지 선언을 하고, 기후변화 리스크를 실제 기업의 경영에 통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CFD가 기업에 의미하는 것은 저탄소 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후변화가 기업에 미치는 위험을 체계적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이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위험을 재무적으로 정량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020년 기준으로 한국 기업 중 TCFD 권고안을 지속가능 보고서에 활용한 기업은 삼성화재, 현대제철, 삼성SDI, 삼성전자, 포스코 등 손으로 꼽을 정도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마저 기본적인 정보를 공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보다 구체적인 기후변화 시나리오 분석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변화 관련 위험에는 저탄소 경제로 전환함에 따라 발생하는 전환 위험(transition risk)과 기후변화의 물리적 영향과 관련된 물리적 위험(physical risk)이 존재한다. 이를 각 산업에 따라 분석하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민감도도 분석해야 한다. 전환 위험으로는 정책·법률·기술·시장·평판 위험을 고려할 수 있다. 물리적 위험은 급성 위험과 만성 위험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급성 위험은 사이클론, 허리케인, 홍수와 같은 기상현상으로 인해 나타나는 위험이다. 만성 위험은 해수면 상승이나 지속적 고온현상과 같은 장기적인 변화에 의한 위험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험 요인과 함께 자원 효율성, 에너지 자원, 제품 및 서비스, 시장, 회복탄력성 측면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기회 요인 역시 상존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후변화가 기업의 경영에 미칠 수 있는 플러스·마이너스 요인들을 수치화해 분석하고 이를 재무적으로 통합시키는 것이 TCFD 실행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재무적인 수치와 전략으로 구체화돼야
TCFD 권고안에 따르면 기후변화 정보 공개 방식은 기업 연간 재무공시 자료에 포함하는 것을 권장한다. 분석 방법은 파리기후변화협약의 2도 시나리오 및 기타 적합한 2~3개의 시나리오로 중장기적 기후변화에 대한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시나리오 분석 경험이 없는 조직에는 정성적 분석, 경험이 풍부한 조직에는 정량적 모델을 사용한 분석을 추천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의 기업들은 정성적 분석을 시작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TCFD에서 권장하는 정보 공개 영역은 ▲지배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와 감축 목표로 구성된다. 이 네 가지 영역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기업이 기후변화 리스크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공시하는 것이다.
지배구조 영역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에 대한 이사회의 관리 감독 역할을 설명하고,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경영진의 역할을 설명해야 한다. 전략 부분에서는 ▲조직이 파악하고 있는 중장기적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를 설명하고, ▲이것이 조직의 사업 전략과 재무 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며, ▲2도 이하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포함한 조직 전략의 회복탄력성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위험 관리 영역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험을 식별, 평가, 관리하기 위한 조직의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이러한 프로세스가 조직의 전체 위험 관리에 어떻게 통합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표와 감축 목표 부분에서는 ▲기후변화 위험과 기회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공개하고, ▲스코프 1·2·3 온실가스 배출량 및 관련 위험을 밝히고, ▲기후변화의 위험, 기회, 그리고 목표 대비 성과를 관리하는 조직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 관련 정보들을 통해 투자자들은 투자 기업이 공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중장기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에 따라 보유 자산의 기후변화 리스크를 정량화해 파악할 수 있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위험도를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2021년 하반기에는 이와 같은 TCFD 권고안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량화해 실행하기 위한 기업과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랫동안 비재무적 요소로 간주됐던 ESG 이슈들이 재무적으로 통합되는 시점인 것이다.
서현정 ERM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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