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용점수 930점(옛 1등급)인 직장인 최병훈 씨(33)는 이달 중순 신한은행에서 5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 계좌를 약정금리 연 2.99%에 개설했다. 이후 신용점수가 자신보다 낮은 810점(옛 4등급)인 동료 A씨가 비슷한 시기에 연 2.76% 금리에 똑같은 5000만원 한도의 마이너스통장을 뚫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씨는 의아했다. “내 신용점수가 더 높은데 왜 이자를 더 물어야 하지?”
하나은행 마이너스통장은 같은 날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신용점수가 900점이 넘는 사람에게 평균 연 3.16%의 금리를 부과했다. 그런데 신용점수 701~800점 사이의 소비자는 801~900점(연 3.33%)에 비해 0.05%포인트 낮은 연 3.28%로 대출을 받아갔다. 신용도가 낮을수록 이자를 ‘덜 내도’ 되는 현상이 발생한 셈이다.
최씨와 동료 A씨가 마이너스통장에서 5000만원을 꽉 채워 대출금을 꺼내 썼다고 가정하면 최씨는 A씨보다 연 13만원가량의 이자를 더 물어야 한다. 신용도가 높아 떼일 위험이 적은 사람에게 이자를 덜 받고,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이자를 더 받는 건 ‘금융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 같은 대출금리 역전 현상이 일반화할 경우 신용도에 따라 금리가 책정되는 신용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은행들은 대출을 내줄 때 개인 소득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여기에 재산 정도와 은행에 대한 거래 기여도 등 다양한 요인을 반영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특정 신용점수 구간에 있는 대출 소비자가 마이너스통장을 뚫을 때 보유예금을 담보로 했거나 우대 혜택을 주는 ‘협약 기업’에 다닌다면 신용점수가 높은 사람보다 이자를 덜 물 수 있고, 일종의 ‘평균의 함정’이 통계에 나타났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수치상 확인된 금리 역전을 통계 왜곡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 많다. 금리 역전이 나타난 은행들에는 중·저신용자에게 고신용자에 비해 은행 이윤에 해당하는 가산금리는 덜 받고, 우대 혜택에 해당하는 가감조정금리는 더 빼줘 금리 할인을 해주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중·저신용자 우대 조치는 코로나19로 고통이 심한 이들을 보호하는 ‘포용 금융’이라는 취지에 걸맞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민간 은행의 대출 시스템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 시장이 교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려도 작지 않다. 정부가 인터넷전문은행에 ‘중·저금리 대출 확대’를 강하게 주문하는 가운데 곧 이들 은행에서도 금리 역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온다.
한 시중 은행장은 “신용도가 낮을수록 대출금리가 낮아진다면 누구도 돈을 제때 갚고, 대출을 줄여 신용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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