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간 기업들은 M&A 시장에서 전례없이 숨 가쁘게 움직였다. 국내에선 거의 매주 대규모 인수전이 진행됐고,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도 역대 최대 수준의 해외 기업사냥이 이뤄졌다. 신사업·핵심 사업에서 압도적 선두에 오를 기회를 포착한 기업은 조(兆)단위 거래도 단숨에 단행했다. 한쪽에선 수십 년간 영위했던 사업을 미련 없이 접었다. 플랫폼 기업들은 올해 유난히 두각을 나타냈다. 네이버·카카오는 의사결정 속도와 유연성을 바탕으로 기업들을 사냥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했다. 올 들어 M&A 시장이 보인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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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모태인 ‘통신과 정유’도 내려놓는 변화를 단행했다. SK루브리컨츠에 이어 SK종합화학의 지분까지 매각하며 자산 효율화에 나섰다. SK텔레콤은 더 이상 통신기업으로 남지 않겠다며 회사를 통신회사와 투자회사로 쪼갰다. 박정호 사장을 포함한 핵심 사단은 통신회사 대신 투자회사로 자리를 옮겨 M&A 성과로 시장에서 평가받겠다고 선언했다.
‘쿠팡 충격’에 휩싸인 오프라인 유통기업들도 핵심 자산을 내놓으며 M&A에 사활을 걸었다. 롯데그룹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을 앞두고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까지 금융회사에 담보로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CJ그룹은 강점이 있는 물류(CJ대한통운)와 미디어(CJ ENM)에 역량을 집중하고, 플랫폼은 외부의 힘을 빌리기로 결단해 네이버와 지분 교환을 단행했다.
올해엔 ‘라이징 스타’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는 세계적 레이블인 이타카홀딩스를, 신생 사모펀드(PEF)인 센트로이드는 세계 3대 골프 브랜드인 테일러메이드를 품었다.
해외 빅딜은 하반기에도 쏟아질 전망이다. 현금 100조원을 보유한 삼성전자는 곧 유의미한 M&A를 보이겠다고 주주들에게 알렸다. LG그룹 역시 쌓아둔 실탄을 바탕으로 해외 M&A 시장 진출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LG그룹의 딜을 차지하기 위해 IB맨들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찾고 있다.
플랫폼 전쟁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신세계가 의류 플랫폼 W컨셉을 인수하자 무신사도 경쟁사인 스타일쉐어와 29CM를 사들였다. 카카오는 지그재그를 인수하며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베이코리아, 하이퍼커넥트, 야놀자, 이타카홀딩스, 지그재그 등 대부분 적자거나 한 해 많아야 수백억원 남짓의 이익을 거두는 회사들이 1조원 넘는 몸값을 인정받았다. ‘계산기’를 대체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게 M&A 시장에서의 성패를 결정짓게 됐다.
차준호/김종우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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