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책정한 올해 전체 R&D 지원액은 27조4000억원 규모다. 지원 예산이 가장 많이 배정된 분야는 ‘한국판 뉴딜’로 불리는 빅데이터,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부문이다. 저탄소 에너지 연구 등을 일컫는 그린뉴딜과 함께 약 1조원이 쓰인다. 반면 반도체 부문은 1% 수준인 2848억원에 불과하다. R&D 지원 항목 중 가장 적은 편이다. 그나마 올해는 지원액이 지난해보다 많이 배정됐다. 전 세계 정부가 반도체 패권 전쟁에 뛰어들면서다.
학계에서는 특히 대학의 인재 양성을 위해 배분되는 금액 규모가 작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반도체 R&D 지원액 가운데 20~30%가량만이 대학 연구비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 미국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반도체 R&D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중심의 첨단기술 R&D를 지원할 1000억엔(약 1조3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미국 상원은 이달 초 반도체, AI 등 분야에 5년간 2500억달러(약 280조원)를 지원하는 ‘미국 혁신·경쟁법’을 통과시켰다. 향후 5년간 기술개발에 1900억달러, 반도체 연구·설계·제조에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실제 반도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R&D 지원액은 2010년 1003억원에서 2017년 314억원까지 줄었다가 올해 1100억원 수준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1100억원 가운데 신규 사업액은 ‘0’이다. 올해 책정된 1100억원은 전부 지난해부터 책정된 사업 금액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에 있는 신규 지원액을 합쳐도 24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학계에선 지속적으로 신규 R&D 지원액이 배정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반도체 선도 기술개발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전체 R&D 정부 지원액이 매년 요동치면서 R&D가 중단되거나 프로젝트를 접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도체 관련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늘릴 수도 없다. 수도권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총정원 한도 내에서만 학과별 인원을 조정할 수 있다. 30명 정원의 반도체 학과를 만들면 다른 과의 정원을 그만큼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우회로는 졸업생을 100% 채용하는 조건으로 기업과 협력해 개설하는 계약학과뿐이다. 민주당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는 29일 대전에 있는 KAIST에 정원 50명 안팎의 ‘삼성전자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학과를 만들 다른 대안이 없다고 본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계약학과는 정원이 많지 않고 모든 대학에 설치할 수도 없다”며 “대학들이 인재 풀을 넓힐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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