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헌과 연구 결과를 봐도 회사 입장에서 상장의 실질적인 메리트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 됩니다. 기업을 주식시장에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제고하고 이미지를 높여서 그 결과로 (1) 회사의 자금 조달을 더 수월하게 더 낮은 비용으로 할 수 있거나, 아니면 (2) 상장이 회사의 영업과 마케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어서 매출과 이익이 개선되거나 두 가지입니다. 상장의 다양한 단점에 대한 연구도 아주 활발하게 진행되고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대규모의 외부 자금 조달이 전혀 필요 없거나 사업의 성격상 불특정 일반 대중에게 회사의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오히려 사업에 해가 되는 많은 회사들이 맹목적으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도 의사결정자에게 상장의 장점이 과대 포장되어 알려지는 반면에 상장의 단점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너들이 상장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상장 주관 업무를 담당하는 증권사이고 어떻게든 상장을 성사시켜야 실적을 올리고 인센티브를 받게 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상장의 단점을 부각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결국은 구조적으로 상장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보의 비대칭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보의 비대칭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서 오늘 상장이 왜 회사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쯤 되면 궁금한 것이 과연 상장의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많은 경우 상장주관사입니다. 높은 가격으로 상장이 되면 주관사는 두둑한 수수료를 챙기고 담당했던 직원들은 큰 인센티브를 받게 되니까요. 그런데 상장 이후에 주가가 하락해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상장으로 인하여 회사가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하나요? 안타깝고 죄송한 일이지만 그건 주관사가 알바는 아닙니다. 주관사는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상장을 해 달라는 고객의 미션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니까요. 문제가 생기면 주관사를 탓해서는 안 되고 의사결정을 한 오너나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상장의 대안이 있는건가요? 할 수만 있다면 회사가 확실한 체력을 키울 때까지 비상장 기업으로 계속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엑싯이나 대규모의 성장 자금 조달이 필요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식 시장(public equity market)의 대안으로 PE 시장(private equity market)이 존재합니다. PE와의 파트너십을 통해서 초기 투자자들의 엑싯과 회사에 성장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주주의 캐시아웃을 전부 다 실현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하이테크나 바이오와 같은 몇몇 특수 업종을 제외하고는 밸류에이션도 상장보다 더 높게 인정받을 수도 있고 한 번에 큰 규모의 투자 유치나 구주 매각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비상장 회사로 남아 있음으로서 거버넌스를 단순 명확하게 하고 미래를 위하여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장기적인 관점의 경영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능력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PE파트너를 만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겠죠.
위와 같은 상장회사로서의 한계와 단점 때문에 주관사의 설득과 영업에도 불구하고 비상장 상태를 고수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더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상장의 폐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대주주나 경영진이 PE투자자들과 손을 잡고 상장(Go Public)의 반대 개념인 자발적 상장폐지(Take Private)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PC회사였던 델컴퓨터(Dell Inc.)가 2012년 PE운용사인 실버레이크(Silver Lake Partners)와 손을 잡고 25억 달러(한화 약 28조원)를 들여서 회사를 상장 폐지한 것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입니다. Dell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은 상장폐지를 추진할 당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Dell은 시장 리더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안이한 생각과 주가 관리와 단기 실적에 매달리는 근시안적인 경영으로 작금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을 깨고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개혁(transformation)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하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월스트리트와의 싸움과 주가와의 전쟁에서 벗어나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하고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만 오로지 전념하고 몰두해야 합니다”. 그로부터 5년만에 Dell 은 PC조립업체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솔루션 (Enterprise Solution Software) 업체로 완전히 탈바꿈하였고 상장 폐지 당시에 24억 달러였던 기업가치는 무려 70억 달러까지 치솟게 되었습니다. 과연 Dell이 상장회사로서 이런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절대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장을 고민 중인 오너와 경영진은 상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나와 우리 회사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꼭 한번 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PE와의 파트너십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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