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맨큐경제학에 실릴 韓임대차법

입력 2021-07-04 17:23   수정 2021-07-05 00:20

폭격 외에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1980년대 초 미국 뉴욕 브롱크스, 브루클린 등이 유령도시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맨큐의 경제학》에 나오는 정답은 바로 ‘임대료 규제’다.

과거 읽은 책의 내용이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는 눈으로만 읽었지만, 세월이 흘러 무슨 말인지 머리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다. 무료한 주말 장식품처럼 항상 그 자리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빼보니 2007년 출간된 《맨큐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 by N.Gregory Mankiw)》 4판이다.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쓴 이 책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제학 입문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에는 마침 임대료 통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상세히 나와 있다.
가격 통제가 불러온 전세난
지난해 7월 31일 한국에서는 임대료를 5%만 올릴 수 있도록 규제하는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됐다. 세입자가 원하면 첫 2년 계약에 2년을 더 살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함께. 올 6월부터 적용된 전·월세신고제까지 임대차3법이 모두 시행됐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임대차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재앙을 경고했다. “도대체 무슨 배짱과 오만으로 이런 것을 점검하지 않고 법으로 달랑 만듭니까? 이 법 만드신 분들, (중략) 우리나라의 전세 역사와 부동산 정책 역사, 민생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이 발언은 당시 법안을 통과시키고 손을 들어올리며 기뻐하는 여당 지도부의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국민은 궁금했다. 과연 누가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1년 가까이 지난 현재 임대차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한마디로 초토화라는 말이 어울린다. 서울 전셋값은 105주 연속 상승 중이다. 전·월세만 난리가 아니다. 세입자들이 매수자로 바뀌면서 서울 외곽의 빌라까지 집이란 집은 모조리 급등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지금의 집값 상승 파동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 계약갱신청구로 2년 연장된 계약은 내년 하반기 끝난다. 그때는 시세대로 전세보증금을 내야 한다. 그동안 전셋값이 얼마나 올랐나. 사상 초유의 폭등이 예고돼 있다.
경제원론과 맞선 대가는 혹독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단기엔 수요와 공급이 모두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임대료 규제로 발생하는 물량 부족의 규모가 작다고 했다. 당장은 임대료 하락이 더 눈에 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로 보면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공급 부족은 더 확대된다고 했다. 즉 전세대란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맨큐 교수도 정부 개입이 무조건 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부가 시장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도 그가 제시하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다. 그럼에도 그는 임대료 규제 같은 가격 통제는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맨큐의 경제학》 책장을 다시 넘기고 보니 작년 여름 임대차법을 통과시킨 주역들은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원론과 맞설 수 있는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표만 얻으면 된다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이렇게 무섭다. 그 만용과 궤변의 대가는 지금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맨큐의 경제학》 개정판에 가격 통제 사례로 뉴욕시 대신 한국의 임대차법이 실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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