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40대가 대학을 다닌 1990년대는 건국 이후 처음 도래한 평온한 대학가를 얼떨결에 누리고 있었다. 즐기기만 할 수도 있었던 여건이었지만 거셌던 민주화 항쟁의 흔적이 남아 있어, 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의무감으로 필독서를 읽고 선배의 ‘라떼는 말이야’를 경외심을 갖고 들었다. 그런 말을 전하는 선배조차 경찰서에 끌려가 본 적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에도, 최루탄 냄새 한 번 맡아 보지 못한 입장에서 누리는 평화는 ‘이게 다 선배들 덕분’이라는 강한 부채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부채감만으로는 30년에 가까운 진보에 대한 충성심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비교해 보니 어쨌든 40대는 성장의 마지막 단물을 맛보았다는 깨달음이 온다. 비록 1997년 말 터진 충격적인 외환위기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6·25전쟁 후 50여 년간 국내총생산(GDP)이 연 5% 이상씩 성장했다. 연 5%면 대략 14년마다 GDP가 두 배 되는 셈이어서, 지금의 40대가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한 후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경제 규모가 두 배가 됐다는 뜻이다. 많은 40대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경제 체제에 안착한 결과 성장과 일자리가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지 감이 떨어진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호시절이 2007년 5.8% 성장률을 찍은 후 끝났다는 사실이다. 2008~2009년 성장률이 떨어진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았더니, 성장률은 2010년 반짝 반등한 이후 10년 동안 연 2~3%대에서 횡보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 정도 성장률은 연 5% 성장할 때라면 GDP가 네 배가 될 수 있는 기간에 두 배 성장도 어렵다는 뜻이다.
기성세대는 MZ세대에 풍요로운 유년기를 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MZ세대는 대한민국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저성장의 늪을 헤쳐 나가고 있다. 그들 안에서도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10년 간격으로 청년(15~29세) 실업률이나 20대 비정규직 비율을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청년실업률은 2000년대는 7~8%대였는데, 2010년대는 8~9%대다. 취업한 임금 근로자도 2010년 20대 비정규직 비율은 31.1%였는데, 2020년에는 이 비율이 37.7%로 뛰었다.
이런 MZ세대에, 더 나아가 청소년에게, 일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소득은 보장해 주겠다는 열띤 논의가 얼마나 희망이 될까. ‘최소한 내 밥벌이는 한다’는 누구나 품을 법한 소박한 자긍심을 지켜주는 것이 나라의 리더가 짊어져야 할 책무가 아닐까. 지난 10여 년의 저성장이 성장통으로 회고될 수 있으려면 성장과 혁신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
어려운 점은 성장과 혁신은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항상 더 좋고 편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와 그 요구에 부응해 돈을 벌겠다는 기업이 시장을 통해 다른 목적 의식 없이도 자연스럽게 일궈 내는 것이 성장과 혁신이다. 정부는 이런 시장에 겸손하고 세련되게 결을 맞춰야 한다. 시장이 항상 바람직해서가 아니라 거스름의 대가가 무섭기 때문이다. 시장의 힘은 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우리 자신한테서 나온다. 우리가 시장이다.
우리가 돈 벌고 쓰는 데 냉정하기 때문에 시장은 냉정하고 그나마 공정하다. 그 냉정함이 엇나가지 않도록, 냉정한 결과가 다소 누그러지도록 정부가 애써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시장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성장도 일자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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