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현상은 긴 역사 속에서 이어져온 우리의 지식과 지혜가 쓸모없어졌다는 얘기다. 주지하듯이 그 이유는 경륜을 기계와 네트워크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엄청난 지식을 두뇌 외부에 무제한 보관하고, 누구나 이용 가능하게 됐으니 경륜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이 결과 모든 기득권이 붕괴되고 기득권 중 으뜸인 과거형 경륜도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새로운 경륜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운 교육이다. 최근 몇몇 대기업은 디지털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을 돌파하기 위해 직접 필요 인력을 선발, 교육한 뒤 채용한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뿐 아니라 한국 대기업들도 미래형 인재 교육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교육의 의무를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수행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얘기는 교육과 세상의 변화 간에 넘을 수 없는 간격이 발생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고등학교, 대학교의 교육 내용이 과거형 지식이라는 증거다. 디지털, 소프트웨어 등 미래 먹거리를 가르칠 교수진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래 산업 중심으로 산업을 구조 재편해야 할 기반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어떻게 대학에 갈 것인가? 누가, 얼마나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등 주로 하드웨어적 방식의 논쟁만 벌여왔다. 반면 교과 과정에 해당하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교육 전문가인 이경숙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고3 학생은 고등학교 3년간 평균 75권의 문제집에서 약 9만 문제를 푼다고 한다. 대부분 인터넷에 있는 9만 문제를 외우기 위해 수험생들은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있다.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완전한 디지털 국가를 향해 맨 앞에 자리하고 있다. 중동 국가의 스마트폰 판매 비중은 거의 90% 내외고, 인도는 5억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형 경륜이 사라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모든 국가는 동일한 출발선에 있다. 누구나 1등이 되거나 혹은 추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지금 어떤 교육을 하는가라는 문제로 결판날 듯하다. 제조업 수출 중심국가인 한국에 교육 문제가 생존 문제인 이유다. 현재의 교육 체계와 내용을 완전히 바꾸지 못한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침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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