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50대 후반~70대 중반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 등 막대한 부를 쌓아온 ‘구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부의 이동’이 시작되면서다. 이에 따라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와 X세대(1965~1980년생)의 주택 구매, 창업, 투자, 자선단체 지원 등 경제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가 부의 이전을 쉽게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 국세청에 신고된 연간 증여액은 인플레이션 감안 시 2010년 450억달러(약 51조1200억원)에서 2016년 750억달러(약 85조2000억원)로 67%가량 늘어났다. 여기에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은 증여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업계는 최근 수년간 자녀 세대가 집을 구매할 때 부모가 계약금을 지급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도와주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이 같은 지원은 사실상 증여에 해당하지만 국세청에서 파악하긴 쉽지 않다.
이처럼 부의 이전이 늘어난 것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부를 보유한 베이비부머 등 구세대가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시작한 결과로 해석된다. 컨설팅업체 세룰리어소시에이츠는 구세대가 2018~2042년에 물려줬거나 물려줄 재산만 70조달러(약 7경950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70세 이상 미국인이 보유한 순자산만 35조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57%에 해당하며 3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다.
미국 고령층의 부가 늘어난 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과 고소득 가구에 대한 세율 인하, 주식·부동산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연금시스템의 약화와 저금리로 많은 사람이 은퇴 후 삶을 걱정하면서 저축을 늘린 영향도 있다.
미국이 그동안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를 높여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 연방정부의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개인의 경우 2010년 100만달러(약 11억4000만원)에서 올해 1170만달러(약 133억원)로 늘었다. 부부는 이 기준이 같은 기간 200만달러에서 2340만달러(약 266억원)로 11.7배 높아졌다.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2016년만 해도 개인 기준 500만달러, 부부 기준 1000만달러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대적인 감세 법안 통과로 2018년부터 이 기준이 각각 1000만달러와 2000만달러로 늘었고 이후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매년 소폭 상향 조정되고 있다. 상속·증여세 한도를 넘는 금액에 대해서만 40%의 세금이 부과된다. 이 같은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는 부의 이전을 원활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이 한도를 낮추겠다고 공약했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 이뤄진 상속·증여세 면제 확대 조치는 2025년까지 유효하다. 당장 상속·증여세가 늘어날 가능성은 낮은 것이다.
연방정부 세금 없이 매년 증여할 수 있는 금액도 증여자와 수령자 1인당 각각 연간 1만5000달러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예컨대 A씨 부부가 두 명의 자녀와 이들의 배우자, 6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면 연간 30만달러(부부 1명당 총 10명의 수령자×1만5000달러씩 15만달러)를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할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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