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 계좌 옮기려면 팩스만 네 번"…은행들 '몽니'에 소비자만 괴롭다

입력 2021-07-06 16:00   수정 2021-07-0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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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모아 운용할 수 있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2016년 도입됐지만 기대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예금, 적금, 펀드 등 금융상품에만 투자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2월 분위기가 바뀌었다. 주식 투자가 가능한 중개형 ISA가 출시됐기 때문이다. 출시 4개월 만에 7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할 정도로 고객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기존 ISA 가입자들이 중개형 ISA로 계좌를 이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대 6주가 걸렸다는 가입자도 있다. 이는 팩스만 네 번을 주고받아야 하는 ‘구시대적’ 이전 절차 때문이다. 고객을 뺏기지 않으려는 은행들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6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조사한 결과 은행에 있던 ISA 계좌를 증권사가 운용하는 중개형 ISA로 옮기려면 열 가지 이전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팩스를 통해 서류를 전송해야 하는 작업만 네 번이다. 고객이 이전을 신청하면 증권사는 이관사(은행)와 팩스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고객 계좌를 관리하던 지점의 팩스 번호를 구하기 위해 콜센터에 전화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 이탈을 우려한 은행은 물론, 중개형 ISA를 도입하지 않은 일부 증권사도 이전에 소극적이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윤 의원에 따르면 한 증권사는 2만7910건의 ISA 계좌 이전 신청을 받았는데, 이전이 완료된 곳은 1222건(6월 말 기준)에 불과했다. 기다리다 지쳐 이전을 취소한 건수는 1만7000여 건에 달했다. 9000여 계좌가 이전 대기 중이지만, 8000여 건이 취소될 것으로 이 증권사는 보고 있다.

피해를 보는 것은 고객이다. ISA는 1인 1계좌가 원칙이기 때문에 이전 신청이 필수다. 은행에 있던 일임형이나 신탁형 ISA를 해지하고 중개형 ISA에 새로 가입하면 혜택이 줄어든다. ISA는 연간 납입한도가 2000만원(최대 1억원)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투자금 1억원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던 소비자가 새로 ISA 계좌를 개설할 경우 5년간 2000만원씩 넣어야 기존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중개형 ISA로의 이전은 막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주식 투자자에게 이만한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에서 발생한 배당소득은 200만원까지 비과세다. 200만원을 초과하는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기존 15.4% 세율이 아니라 9.9%의 분리과세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중개형 ISA 가입자는 출시 4개월 만에 72만7422명(5월 말 기준)을 기록했다. 반대로 신탁형 ISA 가입자는 지난 1월 173만4962명에서 5월 말 90만3790명으로 줄었다. 은행 고객이 증권사로 옮겨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 의원은 “소비자가 선택권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ISA 이전 간소화를 위한 전산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간 이전 절차를 금융회사 방문 1회(과거 구비서류 7개)로 연초 간소화했듯이, ISA 이전 절차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이 문제와 관련해 국회로부터 서면 질의를 받았지만 아직 답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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