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스웨덴의 유명 슈퍼마켓 체인 '쿱(Coop)'이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500여개 매장을 닫아야했습니다. 결제시스템이 마비됐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해커들이 미국에 있는 IT기업 카세야를 공격해 랜섬웨어를 심었는데, 카세야의 고객사인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해당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쿱이 피해를 입은 겁니다. 랜섬웨어는 컴퓨터 시스템을 감염시켜 접근을 제한하고, 이를 풀어주는 댓가로 일종의 몸값(랜섬)을 요구하는 악성 소프트웨어의 한 종류입니다. 카세야는 전체 3만6000여 고객 중 40곳 미만이 피해를 봤다고 밝혔지만, 다수가 클라우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라 1000여개 기업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사태의 주범으론 러시아계 랜섬웨어 갱단인 레빌(REvil)이 지목됐습니다. 이들은 암호를 푸는 댓가로 7000만달러 (약 790억달러)를 요구했습니다.
해커들이 사이버공격이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엔 미국 송유관회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공격을 받아 미국 동부해안 지역에 원유공급이 차질을 빚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유가가 급등하고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랜섬웨어 공격 피해를 입은 국내기업이 78곳에 달합니다.
이처럼 늘어나는 해킹사고와 관련해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눈에 띄는 기고문이 하나 실렸습니다. 제목은 '나이든 근로자들이 사이버 공격의 비밀 병기다(Older workers are a secret weapon against cyber attacks)'입니다. 미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 엘리자베스 브로 연구원의 글인데요. 브로 연구원은 디지털 시대에 저평가돼 있는 '아날로그 시대'를 겪은 구세대의 기술과 가치를 다시 봐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예로 2년전 랜섬웨어 공격을 받은 노르웨이 에너지기업 노르스크 하이드로(Norsk Hydro) 사례를 들었습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제조사이기도 한 이 회사는 해커의 공격을 받자마자, 셧다운하는 대신 회사에 남은 베테랑 근로자들이 수동작업으로 전환해 생산을 지속했습니다. 과거 가동 방식을 알고 있던 근로자들의 일부가 여전히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퇴직 근로자들도 도와주러 왔습니다.
수동방식으로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대표적 업종이 항공 운항입니다. 모든 비행기 조종사들은 비상시 매뉴얼로 작동하는 방법을 숙지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미 해군도 한때 중단했던 별자리를 보며 방향잡는 방법을 다시 가르친다고 합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하는 거죠. 영국 정부는 지난 3월에 보안 국방 외교등 각 분야에서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줄수 있는 전문가들로 일종의 '민간 예비군'을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엔 아날로그 기술자들도 포함돼 있겠죠. 기업들도 제조업, 교통, 헬스케어, 금융 등 각 분야에서 디지털 시대 이전에 사용되던 아날로그 기술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새로운 세대로 이러한 지식과 기술이 전수되게 할 필요가 있다는게 브로 연구원의 주장입니다.
4차산업 혁명이 본격화하는 시대에 아날로그 기술 유지가 현실성이 있을까 싶긴 합니다. 지금이야 과거에 지어진 공장들이 남아 있어서 그렇지만, 새로운 건물이나 시설들은 모두 첨단 디지털 장비로 꾸며져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보안을 강화해도, 자꾸 벌어지는 해킹사건 뉴스들에 불안한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분야는 더욱 그렇겠지요. 예전 아파트 화재 때 디지털 도어락이 작동 안되는 문제가 발생해 이후 보완 제품들이 나왔던 생각도 납니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는 '낭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비상수단'이란 생각도 듭니다.
박성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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