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2000년께부터 양자정보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긴 했으나, 미미한 수준이어서 훌륭한 연구자와 기회를 많이 놓쳤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각각 상당한 수준의 양자암호통신 기술을 선보였으나, 정부 조직 변화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연구가 중단되거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2년 전 정부의 양자정보과학 연구 지원이 극적으로 확대됐다. 이와 함께 양자정보과학기술연구회(QUIST)가 발족돼 국제학회를 3회째 열었고, 우리말로 양자컴퓨팅기술을 소개하는 백서도 발간하고 있다.
올해 양자주간에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대상으로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프로그래밍하고 발표하는 경진대회인 ‘해커톤(Hackathon)’을 개최, 27개 팀의 70여 명이 각축전을 벌였다. 이 대회에는 IBM과 이온큐(IonQ) 두 회사의 양자컴퓨터를 학생들이 직접 사용함으로써 한국 양자기술 미래의 희망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양자컴퓨터는 아직 없지만, IBM의 초전도양자컴퓨터 개발과 이온큐의 이온덫 양자컴퓨터 창업에 우리 과학자가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어 자부심을 더해준다. 양자통신 분야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국내 통신사들이 양자암호통신 시범사업을 시작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양자정보 이전의 정보기술에도 양자물리학이 필수적으로 쓰였지만, 반도체 소자나 레이저 같은 하드웨어 부분에만 관련이 있었다. 이 하드웨어를 운영하는 소프트웨어는 양자물리학과는 상관이 없었기에, 물리학 분야를 나타내는 QC가 아니라 QA에 머물러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양자센서 같은 양자정보 기술은 양자물리학의 여러 원리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까지 주도한다.
필자가 기업 연구소에서 일할 때, 티(T)형 또는 파이(П)형 기술자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한두 분야에서 확실한 전문성을 갖고(세로획), 다른 분야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가로획) 소양을 갖추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서양문자 T나 П보다 한글 모음 ‘ㅜ, ㅠ’가 융합형 인력에 더 좋은 표현이겠다. 양자암호를 발명한 IBM의 베네트 박사는 전공이 이론화학이고, 양자소인수분해 알고리즘을 만든 벨연구소의 쇼어 박사는 응응수학자로, 이들은 기존 학문체계를 깨고 나온 융합형 인재다. 또 미국 보스턴 지역의 양자암호통신망을 총지휘해 성공시킨 엘리엇 박사는 양자물리학과는 관련 없는 수많은 프로젝트를 담당한 엔지니어였다.
양자기술에 쓰이는 양자물리학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초끈이론이나 입자물리처럼 복잡하지 않고, 다만 익숙하지 않아 어려워 보이는 정도다. 젊은 학생과 연구자, 국내 기업에 양자기술 분야에 도전할 것을 권하고 싶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이론과 관측으로 확인된 이후에도, 유럽에서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데 목숨까지 건 도전을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이제 양자기술의 가능성은 확인됐다. 누가 도전할 것인가?
김재완 < 고등과학원 교수 >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