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이사회 여성 할당제 유감

입력 2021-07-07 17:35   수정 2021-07-08 00:07

‘이사회를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내년 7월부터 의무화된다. 또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상장기업이 아닌 금융회사에도 이런 정책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이 자본시장법 규정은 상장기업에만 적용되므로 대부분의 금융지주에만 강제되기 때문이다. 미국 나스닥시장은 성 소수자까지도 이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변화의 방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최근 기업이 받아들이는 ESG의 S(사회) 영역이 인권, 성 및 인종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사를 맡을 수 있는 연배의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의 수가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이런 규정의 적용은 ‘여성에 대한 균등한 기회 부여’ 또는 ‘여권 신장’이라는 취지 및 순기능을 떠나 ‘여성 할당제’, ‘남성에 대한 역차별’ 등 여러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정부 정책은 취지도 중요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새로운 제도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해관계자의 이해를 따져 절충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규정은 내년부터 적용되지만, 많은 기업은 2020사업연도에 대해 2021년 초에 개최된 주주총회에서 다수의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이 규정을 충족했다. 이사가 사내와 사외로 구분되지만, 상법 차원에서는 동일한 이사이니 사외이사를 선임하면서 이 규정을 준수함에 문제가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여성이 남성이 수행해야 하는 업무에 비해서 열위에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에 무관하고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데 이 법 규정이 관여된다.

이 규정 때문에 미흡한 자격의 후보자가 이사로 선임된다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후보자군, 풀 자체에 차이가 있는 것을, 정부가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한다면,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성이라는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냉정하게 문제를 봐야 한다. 무리하게 할당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성, 인종, 출신 학교, 배경 및 계층에 무관하게 모든 경제 활동 인구는 공정하고 정의롭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이런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고 하면 당연히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공정이 또 하나의 불공정을 초래하면서까지 달성해야 하는 가치여서는 안 된다.

근로자이사제의 도입 문제도 비슷하다.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의 권리가 보호돼야 하며 이에는 노동자의 권익도 당연히 포함된다. 단, 노조가 이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해 경영의사결정에까지 동참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장단점이 있다. 하물며, 임원들도 평가보상위원회 등 본인의 이해가 얽힌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위원회에는 위원으로 참석하지 않도록 모범규준 등에서 권면하고 있다. 감사위원회가 최대주주, 최고경영자, 경영진 및 이사회에 대한 감시 업무를 수행하므로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에 의무화되는 이 위원회는 사외이사가 3분의 2 이상이 되도록 구성하고, 위원장은 사외이사가 맡도록 하는 규정을 상법에서 의무화하고 있다. 이해상충을 회피하고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제도상의 보완책이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자본시장법은 우리가 이제까지 크게 고민하지 않던 경제 활동에서의 성별에 대한 문제를 법제화하고 있다. 입법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이미 입법부에 의해서 개정된 법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이 법을 적용할 때는 제시된 문제점을 반영해 속도 조절과 적용 범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한전 등 노동이사제를 추진하던 기업도 이 제도가 법에서 채택될 때까지 이 제도의 도입을 미루는 모습이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여러 차원에서의 합리적 고민이 동반돼야 하며, 여러 이해 관계자의 다른 생각이 인정되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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