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금리 급등에 위축됐다. 경기 회복으로 정부가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며 주식시장에서도 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우려였다. 원론적으로는 채권 금리(수익률)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채권 대비 주식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이유였다. 금리가 S&P500 평균 배당수익률(1.51%)을 넘어 급등하는 국면마다 한국 코스피지수도 조정을 받았다.
하반기 들어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상황을 뒤집었다. 경기회복이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에 국채금리는 급락하고, 글로벌 증시는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2분기 이익증가폭이 최대일 것이라는 ‘피크 아웃’ 진단까지 더해져 증시 속도조절의 빌미가 되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연 1.30%까지 급락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5월 고점을 찍었던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6월 들어 꺾이자 이런 분위기가 강해졌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중요한 지표들이 꺾이면서 미국 경제성장률이 2분기 정점을 찍고 3분기부터 둔화하는 것 아니냐는 피크 아웃의 우려가 시장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동부가 8일 발표한 주간 실업급여 청구건수도 시장의 예상치를 웃돌았다. 상반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였을 뿐 장기 저성장 흐름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 지역에 네 번째 긴급사태를 발효하기로 했다. 도쿄올림픽도 무관중으로 치르기로 했다. 한국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에 들어간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안전자산’인 달러에 투자가 몰렸다. 세계 교역의 바로미터이자 수출에 민감한 한국의 원화는 약해졌다. 9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49원10전에 마감해 연고점을 돌파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신흥국에서 돈을 거둬들였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조3337억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 그나마 개인투자자가 1조8014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1.07% 하락한 3217.95에 거래를 마쳤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지난 상반기에는 금리 급등으로 성장주를 중심으로 주식시장이 꺾였다면, 하반기에는 반대로 금리 급락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주식시장의 변이’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망에도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삼성증권은 하반기 시장의 변수인 금리 변동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가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국면에서는 더 이상 가치주와 성장주, 경기민감주와 경기방어주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며 “하반기 실적 모멘텀이 좋은 주식 등으로 선별해 압축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목해야 할 업종으로 자동차, 배터리 등을 꼽은 전문가가 많았다. 자동차 업종은 올여름 파업 변수를 넘어서면 하반기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배터리도 시설 투자를 지속하면서 투자자의 성장에 대한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재연/이슬기/구은서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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