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피스트-정인호 칼럼] 의사가 환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입력 2021-07-09 16:23   수정 2021-07-09 16:27


"나를 수술한 사람은 의사가 아니었다"

인천 21세기병원의 대리수술 영상이 2021년 5월 MBC에 보도되면서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수술실 내 CCTV설치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CCTV가 무방비 상태에 놓인 환자를 보호할 방법이라고 말한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선 의사를 위축시켜 적극적인 의료 행위가 어려워지므로 결국 환자에게 피해가 될 거란 입장이다. 또한 의료사고 비율이 극히 낮고 수술실 특성상 환자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반대 입장을 주장해왔다. 대한의사협회의 주장에 반해 국민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2021년 5월 31일부터 6월 13일까지 국민권익위원회가 13,9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97.9%로 나타났다.

미국 알래스카주 남부의 중앙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인 앵커리지에는 약 6만 5,000명에 이르는 알래스카 원주민과 아메리칸 원주민을 상대로 하는 보건의료 단체인 사우스센트럴 재단(SCF)이 있다. 1953년에 결핵 요양원으로 문을 연 이 병원의 환자들은 엄청나게 높은 알코올중독과 당뇨 비만, 자살 비율로 몇 대에 걸려 고통받는 소외 계층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미국 보건의료시스템의 높은 비용, 느려터진 연방 관료제, 사회적 취약자인 환자들의 낮은 만족도까지 더해지면서 병원은 항상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현재 SCF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직원 만족도가 90%, 고객 만족도가 무려 97%에 달한다. 당일 접수 진료대기 시간은 20분 미만이며, 28세 이내 영아 사망률이 미국 전역에서 가장 낮고, 혈당 수치 관리 대상 환자의 비율은 전국에서 10% 내로 줄었으며, 천식 입원 환자의 비율은 10%에서 3%로 줄어들었다. 연간 26%를 웃돌았던 직원 이직률은 11%로 줄었다. 비용 면에서도 담당 환자가 7% 늘어났지만 운영 자금은 단 2%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미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의 품질 관리 실적이 탁월한 기업이나 기관에게 국가가 수여하는 말콤 볼드리지 국가 품질상(Malcolm Baldridge National Quality Award)을 비병원 중심인 보건의료 단체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SCF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직접 병원을 소유 및 운영한다. 전 직원의 55%, 보조 직원의 95%, 고위직 임원을 비롯한 관리자의 60% 이상이 알래스카 원주민이다. SCF에서는 8명으로 구성된 통합치료팀이 1,200~1,400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의사, 상담사, 영양사. 간호조무사, 행정관리사, 약사, 행동건강 컨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행동 건강컨설턴트는 현재 보건의료시스템이 치료하지 못하는 식단 습관, 정신 건강과 행동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다. SCF가 관리하는 6만 5,000명의 고객 중 50%의 사람들이 행동건강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고 있다.

SCF에서의 독특한 경영방식 중 환자를 ‘환자’라 부르지 않고, ‘커스토머오너(customer-owners)’로 부른다. 이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병원 서비스 시스템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다. 즉 무엇보다 환자를 대우해주기 위함이다. SCF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영웅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단지 조언자에 불과하다. SCF 재단의 CEO인 캐서린 고틀리브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그의 비전을 이렇게 말한다.

“의사에게 건강을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보건의료시스템 또한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여러분의 소유에요.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면 바꾸세요.”

SCF의 경영방식은 병원과 의료진 중심의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에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준다. 환자를 환자로만 취급하고, 환자를 수익성 극대화하는데 맞춰져 있는 의료시스템으로는 미래가 없다. 무엇보다 병원과 의사가 대접받고 싶다면 병원 시스템이나 직원들의 편의가 아니라 환자를 먼저 대접해야 한다.

내가 아플 때마다 꼭 가는 동네 정형외과의원은 항상 발디딜 틈 없이 환자로 빼곡하다. 그곳에서 의사와 상담하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의사는 환자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의사의 입장이 아니라 환자의 입장으로 대화한다. 또한 SCF의 행동건강 컨설턴트처럼 일상의 습관과 태도를 꼼꼼히 살피고, 상담 후 물리치료 시 물리치료사에게만 맡기지 않고 항상 1~2번씩 와서 치료의 상황을 체크한다. 물론 이 의원에는 의료상담실, 수술실 등 환자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 건의 의료분쟁도 없다. 결국 병원도 인간성이 최고의 마케팅 도구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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