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새로운 변화는 위기이자 곧 기회입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열린 제190차 한경 밀레니엄포럼 웹세미나에서 “공급망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첨단산업의 기술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면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 내 지위는 더 강화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미·중 무역갈등에 기반한 공급망 재편이 한국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핵심 전략산업 분야의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전방위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문 장관은 글로벌 공급망 변화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부가 총력 지원할 것이란 계획을 거듭 밝혔다. 산업부는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등 분야를 총망라한 첨단산업 지원책을 담은 ‘국가전략산업 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이르면 다음달 법안 초안이 나올 예정이다. 그는 “K반도체 벨트 전략에 따라 2030년까지 국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최첨단 공급망이 형성된다”며 “주요 기업이 510조원을 투자하는 만큼 정부도 세액공제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해외 주요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램리서치의 국내 투자가 대표적이다. 문 장관은 “해외 기업 유치는 타깃형 지원을 통해 양보다 질적 성장을 도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장관은 정부와 기업이 현재의 위기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키울 역량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중간재 수출 비중을 오히려 확대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내 위치를 한 단계 도약시킨 사례와 2019년 반도체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 때 민관 차원의 위기 대응 능력을 소개했다. 그는 “대기업이 국내 기업에 문을 열어주고, 정부가 반도체 부품·소재 기업 지원책을 내면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반도체 생산 차질 없이 국내 산업 생태계의 자생력이 오히려 강화된 경우”라고 말했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중국과 미국의 공급망 단절을 수반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은 발생할 수 없고, 한국은 전략적 위치를 잘 선택해야 한다”며 “미국에 의존하는 수동적 자세는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배터리산업에서 원료 채굴부터 가공, 제조까지 모두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며 “특히 중국은 배터리 핵심 원료인 희토류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장석인 산업기술대 석좌교수도 “미국과의 협력만으로 미·중 패권전쟁의 파고를 넘어갈 수는 없다”며 “중국이 무역보복을 하는 경우 G2 양국이 동시에 한국을 공격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세계는 이미 안보와 경제통상이 직결되는 구조가 됐다”며 “산업기술 표준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을 감안해 한국도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나 일본 무역보복 조치 등이 발생했을 때 국내 산업 피해와 관련한 구체적인 비용·편익을 분석해야 한다”며 “정교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정책이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패널들은 첨단산업 인력 양성, 바이오 분야 지원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은 “첨단산업 분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우수 인력 확보”라며 “대학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인력 양성 계획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는 “바이오 분야에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면 한국의 글로벌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희귀질환 및 재생치료제 등 경쟁력 있는 분야에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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